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풍속 불길 순식간에 덮쳐/동두천 산불참사/미군 사격훈련중 발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풍속 불길 순식간에 덮쳐/동두천 산불참사/미군 사격훈련중 발화

입력
1996.04.24 00:00
0 0

◎계곡서 참혹하게 엉킨채 발견/희생자 대부분 20대 공익요원/사격장 이전요구 주민들 “결국 이런일이…”【동두천=박희정·장학만·김경화 기자】 23일 낮 전국에 건조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미군부대 사격장 부근에서 난 산불은 7명의 귀한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갔다. 희생자들은 모두 헌신적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하던 공무원과 20대 초반의 공익근무요원들이어서 주위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사격장 이전을 줄곧 요구해온 주민들은 화재원인이 미군의 사격훈련으로 밝혀지자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동두천시 산림계장 이강욱씨(38)는 낮 12시께 산불이 났다는 연락을 받고 공익요원 등 40여명과 함께 진화작업에 나섰다. 거센 강풍으로 초기진화작업이 여의치 않자 이씨는 공익요원 10여명을 지휘, 소요산 기슭을 피해 반대편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갔다. 정상에서부터 불길을 잡자는 생각에서였다. 정상 부근에 막 도착했을 때였다. 반대편기슭에서 무서운 기세로 올라온 불길이 순식간에 일행을 덮쳤다. 불길을 본 이씨가 『대피하라』고 외쳤으나 거센 불길은 고함소리보다 빨리 일행을 덮쳤다. 화상을 입고 빠져나온 김원기씨(21·공익요원)는 『고함소리에 허겁지겁 달아났으나 불길이 워낙 빨리 덮쳐 피할 겨를이 없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씨등 7명은 하오2시께 계곡에서 서로 뒤엉켜 참혹하게 숨진 모습으로 발견됐다.

공익근무요원 김태훈씨(22)는 위로 누나 다섯을 두고있는 2대독자 막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컴퓨터 자격증 취득을 위해 입영을 2차례나 연기한 성실파였다. 『제대후 믿을만한 직장을 얻어 부모 걱정을 덜겠다』던 김씨는 채 꿈을 이루기 전에 참변을 당했다. 김동완씨(23)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던 효자였다. 지난해 말 여동생(22)마저 교통사고로 숨진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곽정근씨(21)는 4녀1남중 막내로 아버지가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다 다친 후유증으로 왼쪽 다리를 거의 쓰지 못하는 어려운 형편속에 살아왔다.

건조기 산불 발생이 우려되는데도 포사격 연습으로 산불을 낸 미군측의 무분별한 사격훈련에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높다. 미군측은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같이 탱크포와 중화기 사격연습을 해왔다. 이때문에 연간 3∼4차례가량 대형산불이 발생해 주민들은 사격장 이전대책위를 구성, 줄기차게 이전을 요구해왔다.

일선 행정기관의 허술한 산불 진화장비와 진화훈련 미비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삽과 곡괭이, 불갈퀴 등에 불과한 산불 진화장비때문에 산불 동원령이 내려질 때마다 유사한 사고가 날 가능성이 높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