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체제는 과연 붕괴할 것인가? 아마도 이 질문은 요사이 대다수의 국민과 위정자들에게 가장 큰 관심이며 걱정거리일 것이다. 더욱이 3월말 주한미군은 북한이 이미 붕괴과정에 있다고 보고, 북한체제의 붕괴를 가능성이 아닌 사실로 인식하게끔 했으며, 90년이후 계속하여 부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북의 경제난과 연이은 탈북사태는 이러한 인식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정부 역시 북의 붕괴가능성에 대비하여 난민수용준비와 붕괴시의 각종 문제들에 대한 복안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각종 논의와 준비가 필요하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으나 북한 체제의 붕괴를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과대선전하는 데에는 몇몇 문제가 있다고 본다.○정권 붕괴와는 달라
먼저 북한문제를 접근하는 데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시나리오 식의 접근방법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와 체제가 다르고 또한 다른 어느 사회보다 폐쇄적인 북한체제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에는 어느 하나의 시나리오만을 생각하는 것보다 가능성이 있는 몇몇 시나리오를 작성한 후 각각의 실현가능성을 계산하는 것이 보다 더 의미가 있는 작업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북한 체제 붕괴의 예측은 가능성있는 몇몇 시나리오 중 하나에 불과하다. 또한 보다 중요한 점은, 체제의 붕괴와 정권의 붕괴는 다르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양자를 구분치 않고 이해하여, 현재 김정일정권의 붕괴를 곧 북한체제의 붕괴로 인식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는 큰 오류이다. 북한체제붕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 근거로 내세우는 이유로는, 『김정일이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이 부족하다』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하여 체제유지가 힘들다』 『현재의 탈북사태가 체제붕괴의 시작이다』 등등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들은 김정일정권의 붕괴를 가지고 오기에는 충분할지 모르나, 이것이 곧 체제붕괴라고 생각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현재의 상황으로 보아서는 설사 김정일정권이 붕괴한다 해도 새로운 사회주의세력이 정권을 인수하여 북한체제를 유지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비록 요사이 북한으로부터의 탈북사태가 잇따르고 있으나 이러한 탈북사례를 자세히 살펴보면 탈북자들이 남한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동경을 가지고 탈북했다기보다는 북한사회에서의 경제적·정치적 박해를 견디지 못해 탈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북한사회의 유출요인에 의한 탈북이지, 아직 남한으로부터의 유인요인에 의한 탈북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점이 과거 동독주민의 탈동독사태와 근본적으로 다른 차이점이며, 앞으로도 남한으로부터의 유인요인에 의한 탈북이 시작되지 않는 한 과거 동독 식의 대규모 탈출은 힘들 것이다. 더욱이 독일의 경우 70년대 초에 서독의 브란트총리가 동독과의 인적·문화적 교류를 시작한 이후 동독주민들이 서독에 대한 동경심을 가지고 국경을 넘기까지 약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이러한 인적·문화적인 교류마저 허용치 않는 북한의 경우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후에나 이러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이 현재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나 이러한 경제난 역시 체제붕괴를 유발하기에는 불충분하다. 단순한 정권교체와는 달리 체제붕괴의 경우는 경제적인 요인이 그 시발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나, 궁극적으로는 사상적인 변화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사상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열망하는 기운이 무르익어야만 진정한 의미에서 체제변화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중국의 천안문사태가 경제개혁 시작이후 10여년 후에나 일어났듯이, 사상적인 변화는 경제적인 변화보다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더욱이 북한의 경우 일본과의 수교시 받을 50억달러 이상의 보상금, KEDO로부터의 중유와 경수로지원, 그리고 몇몇 정치적인 장애물이 제거되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남한기업으로부터의 대북 투자 등 현재의 경제난을 어느 정도 극복할 만한 여지가 있다.
이같은 요건들을 고려할 때 북한체제가 가까운 장래에 붕괴하리라는 시나리오 못지않게 상당기간 내구성을 지니고 유지되리라는 시나리오 역시 그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후자의 시나리오 아래서는 남한의 입장에서 볼 때 안보적인 측면에 위해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정치 색을 배재한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장기적 수렴통일
이는 과거 전시적이고 일방적으로 북한 측에 베풀기만 하였던 「햇빛론」적인 자세가 아닌, 양측이 모두 경제적인 이득을 보며 긴장완화를 유도할 수 있는 「실리론」적인 자세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장기적으로 남북한의 경제체제를 상호 통합·수렴하게 만들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양체제의 수렴을 가지고 올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논지에서 볼 때 정치적인 고려에 의해 북한체제의 불안정성을 과대선전하여 마치 곧 체제가 붕괴될 듯이 주장하는 것은, 남한국민에게 필요이상의 불안을 그리고 북한에 공연한 자극을 주는 결과밖에는 낳지 않을 것이다.<연세대통일연구원연구위원>연세대통일연구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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