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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미래/김성곤 서울대교수·영문학(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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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미래/김성곤 서울대교수·영문학(특별기고)

입력
199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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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종이책과 싸늘한 전자책 상호보완때 바람직한 문화 창출”활자매체의 죽음을 맨 처음 선언한 사람은 캐나다의 문화인류학자 마셜 맥루한이었다. 1964년에 쓴 「미디어의 이해」라는 책에서 그는 활자시대의 종말과 전자시대의 도래를 선언했다. 그는 이제 논리적이고 연속적인 활자매체의 「핫 컬처(Hot Culture)」시대는 가고, 순간적이고 비연속적인 전자매체의 「쿨 미디어(Cool Media)」시대가 왔다고 보았다. 그가 쿨 미디어라고 부른 것은 물론 컴퓨터와 텔레비전이었다. 출판사는 기념비적인 그의 저서 맨 첫 장에 「구텐베르크여 안녕(Good­Bye to Gutenberg)」이라고 썼다.

그 후 30여년이 지났고 맥루한도 죽었지만, 구텐베르크는 아직도 건재하고 활자문화는 아직도 지배적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오늘도 쏟아지는 책과 잡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으며, 아직도 아침마다 배달되어 오는 신문을 읽고 있다. 그러나 분명 시대는 변했다. 텔레비전과 컴퓨터는 이제 거의 모든 가정에 보급되었고, 모든 직장의 필수품이 되었다. 도서관의 열람카드가 컴퓨터단말기로 바뀌고 도서 대출과정이 전산화한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고, 요즘은 종이책들을 전자책(CD롬)으로 바꾸는 작업이 한창이다. 교수들은 이제 은퇴시에 대학도서관에 장서를 기증하지 못한다. 공간이 없다고 인수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연구실을 가득 메웠던 무겁고 두꺼운 종이책들은 폐지공장 밖에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책의 미래를 걱정한다. 책의 개념에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전자책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더 많이 읽히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신문배달이 없어지고 거실과 화장실에 전자신문 수신용 모니터와 단말기가 설치되며, 비행기나 기차나 버스에도 독서용 컴퓨터들이 부착될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키보드를 누르거나 플라스틱 책을 집어 넣기만 하면 될 것이다(도쿄의 지하철에는 아직 광고용이긴 하지만, 이미 공용 컴퓨터 모니터가 부착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과정은 아주 서서히 일어나서 당분간 종이책과 전자책은 공존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한 가정과 사회에 각기 다른 세대가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면서도 여전히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는 것과도 같다. 사이버공간에서 가상현실과 전자우편과 전자책을 즐기는 신세대 옆에서 구세대는 여전히 현실과 편지와 종이책을 붙들고 있다. 그러다가 간혹은 신세대도 종이책을 읽고, 구세대도 전자책을 본다. 「뜨거운 것」과 「찬 것」은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상호보충적이다. 그 두 가지가 조화될 때 비로소 적당한 온도의 바람직한 문화가 나올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맥루한 자신도 「구텐베르크여 안녕」이라는 메시지를 종이책에 썼다는 사실은 대단히 시사적이다. 플라스틱책과의 경쟁에서 종이책은 살아 남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따스한 종이책세대 역시 살아 남아 싸늘한 전자책세대의 문제점­예컨대 화면의 「윈도(창문)」를 통해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편협성, 경박성, 즉흥성, 절연성, 무관심, 그리고 고립등­을 부단히 경고해줄 것이다. 그것이 곧 역사의 흐름이고, 과거와 현재의 역동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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