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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사는 나라(박경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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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사는 나라(박경리 칼럼)

입력
1996.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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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교훈」 배우려 않고 오늘도 “군국”의 꿈/칼을 숭상하며 잔학 일삼은 일본/소심하고 겁많은 민족성의 반증/집단주의·현인신의존 본색감춰,8년 전이라 생각하는데 일본의 젊은 평론가 가와무라(천촌태)씨와 「문예」의 편집자 다카기(고목유)씨가 원주에 사는 나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철두철미 반일작가입니다』하고 자기소개를 했더니 그들은 다소 놀란듯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가와무라씨는 「문예」에 실은 「반일과 향수의 틈」이라는 글에 철두철미 반일작가라는 말을 듣고 다소 쇼크를 받았다, 그렇게 쓰고 있었다. 한 시절 전만 해도 반일운운 했다 하여 놀라는 일본인은 별로 없었던 것 같고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성 싶었는데 세월이 흐른 탓인지, 물론 그런 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대국이라는 자신감과 군사력을 지닌 강국, 무의식속의 우월감같은 것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그보다 일본의 경제성장을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친일적 지식인들이 증가하는 추세에다 사실 일본의 모방이 판을 치고 있는 형편이고 보면 면대하여 반일이라니 뜻밖이었는지 모른다. 이 밖에도 대화 도중 두번쯤 남경학살에 관해 얘기했을 때와 일본인은 강하다, 흔히들 하는 말이지만 의외로 소심하고 겁이 많은 민족이라 했을 때 그들의 표정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소심하고 겁이 많다는 이 대목에는 한국인들 중에도 의아해 할 사람이 더러 있을 것이다.

○탐미주의는 도피

세계정복을 꿈꾸었던 일본이었기 때문이며 2차세계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으로서 그 잔혹하고 대담무쌍했던 전력을 상기해 본다면 사리에 맞지 않고, 칼을 숭상했던 역사와 그 역사에 단련된 민족이며 자살(절복)을 미학으로까지 끌어올린 그네들 풍토를 생각할 때 터무니없다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게 했는가.

일본인은 집단적 심리에의 경향이 짙다. 그것은 집단에 대한 복종을 뜻하며 따라서 권력에 약하고 강자숭배는 거의 생리적인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 점에 대해서도 일부 한국인은 매우 바람직한 장점으로 꼽는 것 같다. 사실 복종은 단결이며 민족의 역량을 한 곳으로 모아 발전으로 몰고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을 부정 못한다. 그러나 연약한 짐승들이 무리를 지어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생존해 가는 것과는 다르게 인간의 경우에는 생존의 한계를 넘어선 욕망이 있기 때문에 왕왕 그것은 화약고가 되어 폭발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웃을 파괴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도 깊은 화상을 입고 재기불능한 경우가 있으며 2차세계대전은 바로 그와 같은 본보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꽃다운 소년들의 자폭행위나 전원옥쇄, 그같은 용기는 무엇에서 오는 걸까. 그것을 숭고한 것으로, 일본인의 정신적 기조로 삼는 연유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만세일계와 현인신이라는 헛된 멍에, 바로 그것이다. 그것을 옹위하는 군국주의, 군국주의를 존속하게 하는 것 또한 현인신이라, 두 개인 동시 불가결의 동체다.

칼은 물리적으로 육신을 구속하고 현인신은 정신을 사로잡고, 이같이 옥죄이는 공간을 상상해 볼 것 같으면 참 이상하다. 괴기한 것들이 떠오르니 말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이 있고 손바닥만한 연못에는 성냥개비같은 다리가 걸려 있고 생명을 일그러뜨린 분재가 보이고 세련된 포장, 장종지같은 작은 술잔, 손가락 끝에서 노는 앙징스런 우산하며, 기능으로 갈고 닦으며 달려온 역사의 비극을 소름끼치게 느끼게 한다. 비상을 꿈꿀 수 없는 사로잡힌 영혼에게 깃드는 것은 허무주의다. 그리고 쾌락이다. 남경학살, 백주의 난행은 일본군의 전략이지만 뒤집어 보면 그로테스크와 에로티시즘의 여실한 참극, 절망 없이 그 짓을 했을까.

일본문학에서 탐미주의가 정점을 이루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썩어가는 육체, 괴기스러움에 대한 쾌락, 그것은 일종의 도피다. 자살의 미학도 실은 일그러진 새디즘을 포장해낸 것에 불과하고 삶을 정면돌파하려는 의지의 결여로 볼 수 있다. 산다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또 아름다운 것도 없다. 진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진실의 추구야말로 문화의 시발점인 동시 발전의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죽음이 아름다운 진실일 때도 있다. 그것은 초월적 심성일 때 가능하고 대자대비일 때 죽음은 희생이라는 숭고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희생은 베푸는 것이지 강요당하거나 사역당하는 것은 아니다. 현인신을 위하여 꽃처럼 떨어지는 아름다움이란 환상이며 최면술이다. 그같은 죽음들은 죽음으로 내몰려 죽음에 직면한 공포를 죽음으로 극복하려는, 비명과 울부짖음과 몸부림 고통까지 경직되어버린 가장 약한 자의 현실이다.

절대적 암흑을 향하여 그 곳에 눈송이같이 휘날리는 벚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무심이다. 일본에도 사슬을 끊을 기회는 몇 번 있었다. 천주교가 들어오고 소위 후미에(답회)에 의해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을 때, 그러나 시마바라(도원)의 난으로 교도들을 모조리 불태워 죽임으로 끝나버렸고 1차세계대전 이후 일본 전토에 만연하여 국체를 부정했던 사회주의도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권부에 의해 궤멸했다.

○고갈된 창조능력

어느 역사건 절대권력과 절대복종은 있어왔다. 그러나 그것들은 수없이 변화하여 흘렀다. 다만 일본만은 고착하여 변할 줄 모르고 시간을 멈추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인이 아니라도 그 체제 속에서 굳어버리는 것은 당연하다. 소심하고 겁이 많으며 축소지향에다 창조력이 고갈되고 기능만을 능사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얘기가 좀 달라지지만 작년, 한일학생회의 회원들이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상당수의 일본인학생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철두철미 반일작가지만 결코 반일본인은 아니다』하고 말했다. 내 반일사상에 대하여 해명하고 싶은 기분도 있었고 일본인학생들을 어색하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진심이기도 했다.

세계는 지금 개방되어 지구라는 단위 속에 인류는 공존하지 않으면 안되고 부정해야 하는 것은 인류의 생존을 저해하는 것이지 인간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참고가 될까 싶어서 와타베(도부량삼)라는 분이 쓴 글을 발췌하여 소개할까 한다. 그는 전쟁말기 학도병으로 전선에 나갔다가 신병훈련용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세워놓고 십여명의 신병이 차례차례 돌격하여 찌르는데 그러고 나면 인간은 걸레조각같이 되고 마는 것을 목격했다. 와타베씨는 그 훈련을 거절한 탓으로 기막힌 고초를 겪다가 패전을 맞이한 사람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일본인이 피해자라는 의식을 가진다면 원폭피습보다 천황의 권력을 정점으로 하는 지배층, 특히 구군부와 관료 중에서 사법관료, 일본자본주의자본, 천황일족에 의해 저 2차세계대전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인간의 생명만큼 소중한 것은 이 지상에 없다. (중략)사랑이 있는 군비, 자유가 있는 전쟁같은 것은 없다』 『천황은 신에게 기도드리며 일본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하는 분입니다. 그것이 일본의 전통입니다. 이따위 말을 일류대학의 교수가 했지만 소화천황이 전쟁을 선포했고 무조건 항복을 받아들인 사실은 지울 수 없다』등등인데 에토(강등순)라는 평론가도 말하기를 『천황(소화)은 아마도 미국에 무조건 항복을 안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늘까지 계속 살아계시지 않았나 싶다』 감상에 흠뻑 젖어서, 눈물 콧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 올 것만 같은, 도시 그들 지식인들은 왜 그 많은 동포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책임을 묻지 않는 걸까. 그 많은 죽음의 책임자, 한 인간의 장수를 어찌 그토록 눈물겹게 감격해 하는 걸까.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신국이며 현인신이기 때문일까. 세속적 정치에 무관한 것도 신이기 때문일까. 에도(강호)시대 신도의 일파인 후소오교(부상교), 짓코오교(실행교)가 제창한 소위 일본은 만국의 종주국이며 부사산은 지구의 정신이요, 진수라, 이 황당한 생각은 속으로야 믿을리 없겠으나, 오히려 지식층에서 부활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들은 조선 만주 타이완을 반환했다는 말 대신 잃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얼마전 독도망언이 있었을 때 반환이 아닌 잃었다는 그들의 발상을 생각하며 쓰게 웃은 일이 있었지만 사람의 일로서는 설명이 안되고 오로지 만사형통인 신의 세계에서만이 있을 수 있는 일. 왜냐하면 그것에는 설명이 필요없으니까.

그렇다면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이나 지식인이 뭣에 필요하단 말인가. 와타베씨의 말이지만 전쟁을 성전이라는 세계사적 신어를 만들어서 정당화하는 것, 그것 역시 설명이 안되는 부분에는 신을 모셔오는 것이다. 참 편리하고도 생광스런 물건이다.

전쟁은 문화의 어머니요 어쩌구 하는 말도 생각이 난다. 일본지식인들의 대부분은 한국인의 분노를 지겹고 불쾌하고 귀찮아한다. 언제까지 이럴 것이냐, 하면서도 철도를 놓아주었느니, 학교를 세워주었느니, 아무도 그것을 부탁한바 없는 일을 좀스럽고 쩨쩨하게 늘어놓는데 대해서는 말이 없다. 간간이 들려오는 침략이 아니라는 망언에 대해서도 무반응이다. 그들의 계속되는 망언은 괜찮아도 한국인의 분노는 왜 지겨운가. 사리를 명백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잘못은 되풀이된다. 과거지사보다 미래를 내다보는데서 오는 근심이다. 장차 세계에서, 인류라는 차원에서 일본은 어떤 모습으로 있을 것인가. 인류에 속하는 일본인 역시 오늘 군비확장의 의미를 깊이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자결하지 못하는 모친의 목을 조르는 아들의 비극이 없기 위하여.

○망언에도 무반응

끝으로 이야기의 실마리가 되었던 두 사람의 일본인, 소박하고 성실한 인상이었는데 특히 가와무라씨의 사리를 밝히려는 진지한 생각에는 경의를 표한다. 『우리들 일본인은 소위 역사적 교훈을 배우려 하지 않는 민족이며 역사는 역사로서 현재와 무관한 것으로, 방편적으로 사용한다는 정신적 기술을 고도로 발전시켜왔다』―가와무라씨 글 중의 한 대목이다. 그리고 또 『일본의 지배자는 조선인에게 유화정책을 쓰기보다 일본인에게 식민지를 가진 일등국의 제국신민으로서의 자각을 교육해야만 했다』―이것은 「소화와 아시아」라는 글 중의 한 부분이다.

동경진재때 조선인학살에 대해서 가와무라씨는, 의분 죄책 연민을 가진 일본인은 적지 않았으나 그 현상의 바닥에 있는 것을 발가내려는 의지는 없었다. 시인 하기하라(추원삭태랑)도 그 사건으로 대중에 대한 불신이 깊어갔고 깊은 상처를 남겼으나 일본인의 잔학이 어디서 왔는가를 물으려 하지 않았다. 대충 가와무라씨의 말을 정리해 본 것이다. 이렇게 본질적인 것으로 접근하려는 지식인은 드물다. 다만 유감인 것은 「반일과 향수의 틈」에서 일본어세대의 일본의 영향에는 나의 견해가 다르다. 언어는 내용의 수단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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