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참여 일제때부터 고뇌의 줄기/30년대말 유진오·김동리 논쟁서 시작/해방 직후엔 좌우 편가르기로 불 붙어/60년대 김우종·김병걸 등 미학적 접근/「창비」 「문지」 인맥은 비평수준 확대서구의 시론이 소개되던 1910년대에 시작된 한국의 근대 문학비평은 역사의 고비마다 치열한 논쟁과 이념대립을 거치며 풍성하게 발전해왔다. 초창기에는 이광수의 비평활동을 비롯해 김억 백대진 황석우등이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와 시론을 주로 소개하며 자유시의 개념을 정립하는 평론을 벌였다. 김동인이 순예술적 소설의 기준을 제시하며 형식주의비평을 시범했고 염상섭은 사실주의를 중시하는 문학관을 펼쳤다.
본격적이고 과학적인 의미의 근대비평은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의 일원이었던 김기진으로부터 출발한다. 민중의 현실을 외면한 문학에 반성을 촉구하며 노동자계급문학을 주장한 글 「클라르테운동의 세계화」는 외래의 문학이론을 소화해 한국실정에 맞게 전개해 나간 기념비적 평론으로 평가되고 있다. 김기진에 이어 박영희도 카프의 이념을 대변했다. 예술성보다 「문학은 계급투쟁의 부속물」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박영희는 그러나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며 전향을 선언했다. 임화 김남천 안막등도 카프의 조직개편에 간여, 계급문학의 이론과 투쟁의식 강화에 기여했다.
예술성추구와 계급투쟁의 복무를 두고 벌어진 김기진과 박영희의 창작방법논쟁, 문학운동과 계급운동의 관계에 관한 임화와 김남천의 논쟁은 해방 이전 계급주의문학론을 강화시켰다.
카프계열과 이광수 김동인 정인보등 국민문학파로 나뉘었던 비평계는 해방과 함께 좌우로 선명하게 갈라선다. 임화 김남천 이원조등은 「문학가동맹」을 결성, 좌익문단을 통합하고 조선문학자대회에서 봉건잔재 청산, 계급주의에 입각한 민족문학의 건설등을 내세웠다. 이에 대항해 박종화 오상순 이헌구등이 조선문필가협회를, 정태용 조연현 김동리 서정주 조지훈등이 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한다. 특히 이헌구 김동리 최태응 조연현등이 주축이 된 우파문인들은 30년대말 유진오와 김동리 사이에 벌어졌던 순수문학논쟁의 맥을 잇는 논쟁을 벌인다.
김동리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일부 문인들을 비판한 김남천의 「순수문학의 제태」를 반박하면서 순수문학은 실질에서 민족문학이며, 민족단위의 휴머니즘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동석이 김동리의 소설 「혼구」에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역사를 표상할 세계관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시작된 두번째 논쟁은 김동리, 조연현등의 반론을 낳았다. 이들은 김영석 박찬모 김남천 임화 오장환등 좌파와 김동리 조지훈등 우파로 나뉘어 집단논쟁을 벌이기도 했으나 좌파문인들이 대다수 월북하고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면서 논쟁도 그치게 된다. 그 직후 김동리는 민족문학론을 다시 거론하고 이헌구는 반공문학을 제창한다.
전후는 실존주의에 영향을 입은 비평과 문학작품의 내적 분석을 지향하는 형식주의이론의 강세로 요약된다. 양병식 손우성등이 실존주의문학을 소개했고 김붕구가 「인간적인 위엄」을 중심으로 휴머니즘의 논리를 깊이있게 만들었다. 뛰어난 재기와 감수성으로 50년대 비평계를 뒤흔들었던 이어령은 서구문학이론과 비평방법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이른바 「화전민의식」을 내세우며 한국문학의 전통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나섰다.
또 작가나 문학전통을 배제하고 작품 자체만을 분석대상으로 하는 신비평이 백철에 의해 깊이있게 소개돼 이어령 유종호 이철범 김윤식 천상범 정창범 홍사중 윤병로등에 영향을 끼쳤다. 이외에도 이 시기에는 홍사중 김우종 김종후 김상일 천이두 최일수 이철범 김양수 원형갑 김운학등이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
60년대는 순수·참여논쟁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순수문학논쟁의 선례로 유진오 대 김동리, 임화 김동석 대 김동리 조연현등의 논쟁이 있었지만 이 시기의 논쟁은 문학의 기능과 예술성의 문제를 미학적 차원으로 깊이있게 파고 들어갔다.
60년대 초반 김우종의 「파산의 순수문학」 김병걸의 「순수와의 결별」 김진만의 「보다 실속있는 비평을 위하여」에 대해 이형기 김상일 원형갑등이 순수문학을 옹호하는 글을 발표했다. 순수문학이 한국문학을 이끌어온 전통문학관이라는 논리를 전개한 서정주의 「사회참여와 순수개념」에 대해 홍사중이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상계가 주최한 「문학과 현실」 심포지엄에서는 이형기가 순수문학을 옹호하고 최인훈 조동일등이 참여문학을 지지했다.
67년 세계문화자유회의 세미나에서 김붕구의 발제논문 「작가와 사회」를 둘러싸고 벌어진 선우휘 임중빈 이호철 이철범 김현등의 원탁논쟁, 이어령과 김수영의 지상논전도 순수/참여논쟁의 일환이다.
70년대 비평은 「창작과비평」(66년 창간) 「문학과지성」(70년 창간)이라는 두 계간지를 중심으로 폭을 넓혀갔다. 참여문학 확산의 결정적 역할을 한 창비 평론가는 백낙청 김병걸 구중서 염무웅 임헌영 임형택 김종철 김흥규 최원식등이다. 문지의 비평활동은 김현 김병익 김치수 김주연 오생근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한국비평문학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현장비평의 발전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 두 집단은 순수·참여의 도식적 편가르기를 반대했지만 창비는 순수를 비판하는 입장에, 문지는 참여에 일정한 제약을 두는 위치에 서 있었다.
이 시기에는 4·19가 리얼리즘문학 출발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구중서의 주장을 김현과 김윤식이 비판하고, 염무웅이 지지하는등 이른바 리얼리즘논쟁이 벌어졌다. 또 농민문학의 필요성에 대한 찬반을 놓고 염무웅과 김치수가 대립했다. 백낙청 임헌영 염무웅 김병걸등이 민족문학론을 주장하고 김주연등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김우창 김윤식 김현 백낙청과 김재홍 권영민 조남현 오세영 조동일등의 활동도 두드러진다.
80년대는 민중문학논의가 비평계를 주도했으며 창비와 문지의 강제폐간 이후 「실천문학」 「우리세대의 문학」등 무크지를 통해 새로운 평론가들이 대거 출현한다. 김명인은 「지식인문학의 위기와 새로운 민족문학의 구상」을 통해 민중의 각 부문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민중문학론을 역설했다. 조장환은 이를 더 발전시켜 민주주의 민족문학론을 제시했으며 김사인 강형철 이재현 현준만 백진기 김재용 김형수등이 다양한 민중문학논리를 전개했다.
문지의 2세대는 홍정선 성민엽 권오룡 진형준 정과리. 성민엽은 민중주의 비평이념 위에서 문지와 창비의 이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논리를 구축했고, 정과리와 진형준은 예리한 현장비평을 펼쳤다. 홍정선은 탄력적인 민중주의 비평이념 위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통시적 조망을 보여주고 있다. 이남호 이동하등은 일정한 집단에 속하지 않은채 독창적 활동을 하고 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평론가들 출신학교/80년대 이전엔 서울대 출신 압도적/신동욱·백낙청·김현·염무웅 등 배출
시·소설에서 중앙대 문창과나 동국대 경희대가 명성을 누린다면 평론에서는 단연 서울대이다. 서울대는 주요 비평가들의 대부분을 배출했으며 그 중에서도 국문과가 가장 숫자가 많다. 신동욱 김열규 이재선 김우종 김윤식 김용직 오세영 김재홍 권영민 조남현 최원식 전영태 홍정선 김사인 김명인 이동하 우한용 이승윤 서준섭 정호웅 한 기 권성우 김동식등이 서울대 국문과출신이다. 영문과에서는 「시학평전」등으로 유명한 송 욱을 비롯해, 김우창 유종호 이성원 김종철 장경렬 설준규 윤지관 정남영 김영희등이 나왔다. 불문과 출신으로는 김붕구 정명환 김 현 곽광수 김화영 김치수 오생근 진형준 권오룡 정과리 서정기가 있다. 독문과는 염무웅 안삼환 김주연 김태현 임홍배, 중문과에 정재서 성민엽등을 들 수 있다.
연세대출신은 이선영 정현기 최유찬 김 철 김영민등. 고려대 출신으로는 김인환 황현산 최동호 오탁번 이남호 이경호 이광호등이 있다. 서강대는 이태동 김욱동 우찬제, 동국대는 홍기삼 황종연 송희복 박혜경등을 배출했다.
80년대를 분기점으로 이전에 활동했던 평론가들이 대부분 서울대 출신인데 비해 최근에는 출신학교가 다양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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