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미술 꽃피운 “큰 뿌리”/조선대 미대 창설 등 후진양성 열정 “풍성한 가지”/독창적화풍 계승 후학들 중진으로 성장 맹활동우리 산하의 밝고 아름다운 색조를 되찾아 구상회화를 부흥시킨 오지호(1905∼82)의 전성기에 제작된 미공개작품 40여점을 선보이는 「오지호 회고전」이 예화랑(02―542―5543)주최, 한국일보사 후원으로 15∼27일 열린다.
국내 서양화단에 큰 발자취를 남긴 오지호는 생전에 후진 양성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아 많은 후배들이 그의 독창적 화풍을 계승하고 있다. 그가 40년 가깝게 광주를 지키며 일군 화맥은 호남이라는 국지성을 뛰어넘어 초창기 서양화단의 밑거름이 됐다. 직접 길러낸 제자와 그의 예술정신을 좇았던 후학들은 현재 중진 또는 중견작가로 성장, 우리 화단의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전주고보와 휘문고보를 졸업, 도쿄(동경)미술학교를 나온 오지호는 개성의 송도고보와 조선대에 재직하는 동안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도쿄유학후 송도고보 교사였던 친구 김주경의 후임으로 부임한 그는 1935년부터 1944년까지 9년간 이 학교에 재직하면서 조창환씨(작고)등을 지도했다. 조씨를 제외한 작가들은 대부분 북에서 활동했다.
오지호의 후진 양성은 해방과 함께 광주에 정착하면서 본격화한다. 그는 미술연구회를 결성한데 이어 49년 조선대미대를 창설했고 잠재력 있는 제자들이 그의 지도로 재능을 꽃피워갔다. 그는 또 당시 광주에서 활동하던 전통산수화의 거목 허백련과 함께 우리 화단을 풍요롭게 가꾼 남도미술시대를 열었다.
그가 60년 조선대를 물러날 때까지 길러낸 제자는 오승우, 승윤등 자제를 비롯, 진량욱(작고) 조규일 박남재 강길원 이태길 송룡 최쌍중씨등 30여명에 이른다. 작품제작에 전념하기 위해 대학에서 물러난 그는 후배 임직순씨를 후임으로 불러들여 조선대미대의 화맥을 잇게 했다.
현재 광주지역의 중진작가인 강련균 황영성 최영훈씨등은 임씨의 제자인 동시에 오지호의 화풍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그의 경쾌하고 생동적인 붓놀림과 신선한 색채구사 기법은 구상작가들의 교과서로 받아들여졌다.
조규일씨는 『「자연재현」만이 회화의 절대적인 길이라고 믿으셨던 선생님의 굳은 신념은 우리 자연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며 『고집스럽게 매달렸던 한자교육부활운동도 강직한 예술철학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조대부고시절 지도를 받은 광주시립미술관장 강련균씨는 『민족의 정서를 토대로 사물의 겉모습만 아니라 내면의 느낌까지 화폭에 담아내야 한다고 강조한 가르침은 민족의식교육의 연장이었다』고 회고했다.<최진환 기자>최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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