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경쟁은 커녕 정계은퇴 위기4·11총선에 정치생명을 걸었던 이기택 민주당상임고문은 믿어지지 않는 자신의 패배를 보면서 뭘 생각할까. YS의 텃밭인 부산에서 반YS 기수를 자처하며 8선고지를 넘보던 그는 「YS의 전령」인 김환의원에게 근소한 표차이긴 하지만 패배함으로써 30년 정치이력중 최대의 위기에 몰렸다.
이고문의 패인으로는 부산의 지역정서, 4년간의 지역공백등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이고문측은 특히 선거판 중반에 몰아닥친 장학로축재비리파문이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고 보고 있다. 장씨사건으로 YS가 정치적인 수세에 몰렸다고 판단한 부산유권자들이 강한 불안심리를 느껴 김의원쪽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다.
해운대·기장갑은 다소의 공백이 있긴 했지만 이고문이 지난 8대국회때 부터13대까지 단 한차례 불출마를 제외하고는 5차례나 내리 당선됐던 지역으로 그의 정치적 아성이나 다름없었던 곳이었다. 물론 90년 YS가 이끌던 통일민주당의 원내총무였던 그가 3당합당직후 YS를 격렬히 비난하면서 불참을 선언, 그의 아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후 DJ와 손잡은 이고문은 결국 YS바람을 피해 아예 전국구로 옮겨갔고 대신 13대 전국구였던 김의원이 지역구를 차지하게 됐던 것.
여하튼 그는 민주당 및 자파소속인사의 참패에다 자신까지 패배함으로써 차기대권경쟁에서 멀어지는 것은 물론 정치적 생명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때문에 13대때 DJ바람에 밀려 전주에서 낙선, 사실상 정계를 떠날수밖에 없었던 이철승 전 신민당대표의 선례를 되풀이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없지않다.<이동국 기자>이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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