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는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15대 총선에서 승리한 후보의 뒤에는 후보 못지않게 뛰어다니거나 후보를 대신해 표밭을 다진 눈물겨운 내조가 있었다. 승리의 환호 뒤에서 조용히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두 명의 아내야말로 이번 선거의 또다른 당선자이자 「아내 만세」이다.◎박성범 후보 아내 신은경씨/상가 설거지·목욕탕 때밀이 순례
KBS앵커출신의 신한국당 박성범씨(55)가 서울 중구에서 4선 관록의 정대철 의원(국민회의)을 무너뜨리며 최대 이변을 일으킨 이면에는 부인 신은경씨(37)의 헌신을 빼놓을 수 없다.
같은 KBS의 앵커 출신으로 궂은 일이라곤 전혀 해보지 않은 신씨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몸으로 부대끼는 것』이라는 생각에 선거운동 기간 내내 남편의 손과 발이 됐다.
신씨는 새벽부터 신당동 달동네를 돌아 다니며 상을 당한 집에서 직접 설거지를 했다. 목욕탕을 순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아주머니들의 때를 민 것은 유명한 일화다. 노인정도 찾아 다니며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온갖 수발을 들었고 병원을 찾아 불우한 노인들을 돌보았다.
하루 24시간중 1분이라도 놓칠 수 없다는 마음으로 강행군한 탓에 이틀에 한번씩 영양주사를 맞기까지 했다. 신씨는 『거리에서 아주머니들이 세간에 잘못 알려진 남편의 전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볼 때 가장 당황했다』며 『그러나 당당하고 솔직하게 사실을 말해 이해시켰다』고 말했다. 신씨는 잘 알려진대로 아내를 사별한 박씨와 지난해 결혼했다.
박씨도 당선일성으로 『나의 당선은 영안실 등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않은 아내의 승리』라고 말했다.<권혁범 기자>권혁범>
◎허화평 후보 아내 김경희씨/신발 5켤레들고 하루12시간 누벼
경북 포항북 선거구에서 옥중출마한 허화평 후보(무소속)를 당선시킨 김경희씨(51)와 맏딸 시영씨(26). 김씨는 역사 바로세우기로 쓰러진 남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오늘의 이 기쁨은 허화평의원 개인의 것이 아니라 온갖 탈법과 불법 속에서도 유혹되지 않고 현명한 선택을 해준 포항시민의 승리입니다』라고 남편의 당선소감을 대신한 김씨는 남편의 면회 준비로 그동안의 피로를 한번에 잊어버렸다.
김씨는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 새벽5시에 일어나 딸과 함께 기도를 하고 집을 나섰다. 언제나 오른손에는 단화 4∼5켤레가 든 두꺼운 비닐봉지를 들고 선거본부에 들러 사무국 직원들이 짜놓은 일정에 따라 딸과 함께 하루10∼12시간의 선거운동을 폈다.
어머니는 주로 여성밀집지역인 죽도시장을, 딸은 철강공단 근로자들의 출근길인 형산로터리로 나가 남편의 정직과 포항시민의 자존심을 호소했다.
김씨 모녀는 허씨를 비방하는 유인물이 살포될 때는 너무 힘들어 포기할 생각까지 했으나 말없이 잡아주는 유권자들의 손길과 차가운 교도소에 있는 남편을 생각하며 힘을 잃지 않았다고 말했다. 딸 시영씨는 프랑스에 유학중 아버지와 어머니를 돕기 위해 귀국했다.<포항=이정훈 기자>포항=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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