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가 외면한 「색」을 향한 외침「현대시」 4월호는 「평론가들이 선택한 이달의 시인」이라는 기획 꼭지에서 채호기를 다루고 있다. 이런 좀 선동적인 제목에 대해 시인은 정작 쑥스러워 하겠으나 그 곳에 실린 시들은 그 선택이 맞춤했다고 느끼게 해줄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채호기의 시를 주목하는 이유는 그가 한국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몇 안되는 시인 중의 하나라는 점에 있다. 한국시가 외면해 버린 지대, 그래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유령들이 온갖 괴이한 표정과 운동으로 우글거리는 문화적 정글이 사방에 있다. 그리고 그는 그 정글 속으로 성큼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그가 연 새 지평을 나는 「무엇보다도 색을!」이라는 명제로 요약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베를렌이 「무엇보다도 음악을!」이라고 외쳤던 때의 새로움을 지금 이곳에서 갖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시는 가장 잡스런 때조차도 언제나 「공」을 바랐고 여전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 의미의 핵심 속으로 빨려들어 스스로 의미의 오롯한 촛불로 타오르길 바라는 것, 그것이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말씀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고치를 짓는 탈욕망의 욕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기이한 전도, 공은 영원하고 색은 덧없다고 하는 말씀―욕망의 기둥을 그는 흉측한 자귀로 무너뜨린다. 그에겐 오히려 공은 덧없고 색은 집요하다. 『꽃잎에 웅크리고 세월을 건너갈 때 세상의 시선이 곤충의 다리처럼 머리카락을 쥐어뜯는』 것에 시인은 진저리치지 않는가? 그 세상의 시선은 진리를 관통하는 시선, 한 순간에 한 마디 진언을 건져올리는 그런 시선이 아니다. 『시선은 오히려 너의 뇌를 집요하게 뜯어먹고 있어 너의 눈은 외부가 보이지 않는다』 모든 말씀들은, 모든 뜻들은 본래의 사물들, 뜻없어 징그럽고 구역질나는 사물들로 환원된다. 『태양은 목조계단 밑에서 마셔버린 병처럼 소리지르며 굴러다닌다』는 시구를 통해 태양은 그에게 사람들이 부여했던 모든 위대함을 박탈당한다. 그것은 모든 잡스런 것들과 뒤엉키고 온통 잡스럽기만 할 뿐인 것들이 수사학에서 「파라탁스」라고 부르는 병렬구문을 통해 덧나고 뒤엉키며, 자기의 뿌리를 상대방의 뱃속에 박으면서 혼탁하게 싸움질한다.
이 사물들의 『강렬한 색채』, 순수하게 강렬하기만 한, 그래서 아주 끔찍스러운 사물들의 아귀다툼 세상! 그러나 그 세상에 가야만 비로소 사물이 사물을 서로 부른다. 이쪽에서는 모든 사물들은 진리, 의미와만 통화한다. 그러나 모든 진리와 의미가 더러운 오물처럼 싸질러진 그곳에서는 사물들은 저들끼리만 통화할 수가 있는 것이다. 『너의 입술』 『너의 꽃』 『너의 내장』, 그의 시가 한결같이 「너」를 말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 「너」는 「당신」 「님」에 대한 우리의 모든 고정관념이 무너져 괴물처럼 변해버린 타자이다.<정과리 문학평론가·충남대교수>정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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