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988년 올림픽개최를 계기로 나라의 격이 한 단계 올랐다고 볼 수 있다. 내친 김에 월드컵축구도 한국이 유치했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한국인은 가시화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능력에 있어서는 무서운 힘을 발휘해왔다. 많은 부작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산업화와 민주화는 놀라운 속도로 진전되어 왔고 88올림픽의 성공은 많은 사람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월드컵도 일단 유치만 하면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한국은 내년 8월 세계정치학회를 유치해 놓고 있다. 세계정치학회(IPSA)는 3년마다 열리는 학술대회로, 말하자면 정치학의 월드컵에 해당한다. 이 대회는 서울에서 세계의 저명한 정치학자 2,000여명이 참가하여 「갈등과 질서」라는 주제로 발표와 토론을 벌인다. 이 대회가 아시아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냉전의 고도 한국에서 열린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만약 좀 더 일찍 시설을 갖춰 놓았더라면 IPSA도 경주에서 열 수 있었을 것이다.보도에 따르면 2000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개최지가 조만간 결정된다고 한다. 김영삼대통령은 지난 3월 1∼2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ASEM에서 2000년 한국개최를 유치했다. 이 회의는 유럽과 아시아의 25개국 정상이 모여 양 지역간의 정치적 대화를 나누는 중대한 행사이다. 지금 정부에서는 뜻깊은 아시아·유럽정상회의를 어디서 개최할 것인가를 놓고 고심하고 있으며 경주가 유력한 후보지라고 듣고 있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ASEM의 개최는 경주가 적절하다고 강조하고 싶다. 우선 경주는 천년고도로서 한국의 문화유적의 보고이며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문화유적지라는 점이다. 이데올로기와 군사력이 세계를 지배하던 동서냉전체제가 붕괴한 후부터 경제의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하면서 세계는 넓은 의미에서 문화의 힘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경주는 이미 유네스코가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며 실제로 한국을 방문한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여행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곳으로 경주를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세계적 문화유산
또한 한국역사의 개성이 살아 숨쉬는 경주에 세계의 지도자가 모임으로써 문화면에서 지방화와 세계화의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대전에서 엑스포가 열렸고 광주에서 비엔날레가 있었다. 내년에는 부산에서 아시안게임, 전북 무주에서는 동계 유니버시아드가 열린다. 그리고 강원도 용평에서는 99 동계 아시안게임이 열린다. 이처럼 회의의 성격에 따라 편리하게 개최지를 정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체육대회는 적절한 시설이 있는 곳이면 되고 산수가 수려한 곳을 우선한다면 제주도나 설악산도 좋고 참가인원이 수천명이 넘는 대형회의는 당분간은 서울에서 개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ASEM과 같이 25∼30여개국의 정상과 그에 따른 취재진이 모이는 중대회의라면 우리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보여야 할 것은 우리의 값진 문화유산과 경쟁력있는 상품을 만들고 있는 산업시설일 것이다. 그런데 문화유산은 수천년 내려온 것이기 때문에 집중투자나 첨단기술로 갑자기 만들 수는 없다. 특히 ASEM은 동서양 두 거대문화권의 대화의 광장이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보여줄 것은 한국문화이며 그런 점에서 경주는 그 상징성이 대단히 높다.
그리고 경주 주변에는 한국의 경제발전상을 실감할 수 있는 포항과 울산이 있어 시찰코스도 간편하다. 경주는 그동안 개발과정에서 문제점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관광문화도시로서는 가장 좋은 곳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주변에 대구, 포항, 울산, 김해등 4개의 공항이 있고 앞으로 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수도권에서 2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는 명소이다. 경주는 이미 세계적인 관광도시로서 국제회의와 관련된 기반시설과 주요 국제행사 경험을 가지고 있어 약간의 시설보완과 대형전문컨벤션센터만 있으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회의개최가 가능하다. 보문단지에는 특급호텔 5개, 객실수 2,000실이 이미 확보되어 있다. 주요 국제행사로 1993년 일본의 호소카와총리와의 한일정상회담, 1995년 중국 강택민(장쩌민)주석 방문이 있었다.
○컨벤션시 외국예
이 기회에 우리는 외국의 컨벤션시 건설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스위스의 제네바, 영국의 버밍엄,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보듯이 외국에서도 수도권보다 문화유적이나 관광자원이 풍부한 지역에 컨벤션센터를 건설하여 안전하고 쾌적한 분위기 속에서 국제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경주는 전원, 문화관광도시로서 컨벤션시 입지에 더없이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나는 21세기가 시작되는 2000년 경주에 모인 ASEM지도자들이 우리 조상의 걸작인 석굴암의 본존불을 보고 중국과도 다르고 일본과도 다른 한국의 고유한 멋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고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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