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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꾼」이 흐리는 선거(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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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꾼」이 흐리는 선거(사설)

입력
1996.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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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의 혼탁한 분위기는 또 한번 타락한 정치풍토에 대한 개탄을 금할 수 없게 한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정치 자체에 대한 현오가 심한 국민들은 국가 의정을 위한 자신들의 대표를 직접 선출하는 경사에 참여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기분을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이처럼 선거판의 분위기가 구시대적 작태에 대한 우려나 불쾌감으로 뒤덮이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정치가 기층 시민들의 진정한 대표들이 모여 시민들을 위한 토론과 입법을 하는 과정이 되지 못하고, 이른바 정치꾼들에 의해 자기봉사적으로 전횡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념이나 정책적 입장에 상관없이 수많은 정치인들이 수시로 소속 정당을 바꾸어 빈축을 사고, 정당 공천이 사주(사주)격 지도자와의 친소관계나 헌금액수에 따라 결정되었다는 비난이 분분한 것이다.

우리의 이러한 정치적 딜레마를 서구의 지식인 사이에 회자되는 「정치계급」(POLITICAL CLASS)이라는 개념에 연결시켜 보면 중대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명백한 이념·계급정당으로서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서구의 정당들 내에는 정치를 전업으로 하는 이른바 전문정치가 집단의 등장에 대한 비판과 반성이 있었다. 이들 전문정치인들이 진정한 의미에서 기층 시민들을 대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이들이 권력의 획득·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동안 결국 시민들의 정치적 소외가 심화된다는 것이다.

비록 정치제도의 뿌리와 정치발전의 과정은 다르지만 우리에게 이같은 정치계급 문제의 심각성은 유난히 절실하게 느껴진다. 한국의 특수한 정치사적 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우리로부터 나와서 우리의 구체적 삶의 조건과 희망을 대표할 수 있는 정치인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우리에게 「그들 정치인」이란 우리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권력에 눈이 멀어서 정치판을 떠나지 못하는 특수한 부류로 여겨진다. 그래서 선거운동 과정에 돈과 폭력이 휩쓸어도 능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며 쉽게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어렵게 일구어 낸 우리의 민주주의가 이기적 정치계급들의 작태로 더럽혀지고 급기야는 정치에 대한 혐오와 무관심이 확대되는 상황이 결코 방치되어서는 안된다. 정치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을 획득하려는 정치꾼들의 자기봉사 과정이 되어서는 안된다. 총선에서 선출되어야 할 국회의원은 그들의 체험, 생활, 이념, 정책이 우리를 진정으로 대표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이번 총선이 자기봉사적인 정치계급들을 신성한 정치의 장에서 도태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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