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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신문 100돌·40회 신문의 날/오택섭(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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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신문 100돌·40회 신문의 날/오택섭(특별기고)

입력
1996.04.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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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 언론인상의 모색구한말의 대선각 서재필이 개화·독립·민족·민주의 기치를 내걸고 국내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한 것이 1896년 4월7일. 오늘이 그 창간 100돌을 맞는 뜻깊은 날이다. 그간 우리는 일제의 강점과 6·25동족상잔등 내우외환을 이겨내고 선진국대열에 들어설 채비를 갖추게 되었다. 사회발전의 견인차인 언론도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68개의 일간지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잡지를 비롯하여 5개의 지상파TV, 30여개의 케이블TV와 시험방송에 들어간 위성방송을 합치면 적어도 50여개의 방송이 가능한 멀티미디어, 멀티채널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언론, 특히 신문은 이러한 외형적 발전에 걸맞은 내적 성장을 이룩했는지 비판적 성찰을 해봐야겠다. 결론적으로 한국신문은 지배적인 언론관의 부재로 정체성이 불분명하고 전문성의 부족으로 내용이 피상적이고 획일화하여 시대적 요구에 부응치 못하고 있다.

언론의 역사는 하나의 지배적인 언론관과 이에 맞선 언론관이 충돌하여 새로운 언론관이 등장하게 되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발달과정의 순환이었다. 독립신문이 그러했듯이 국가건설 초기의 신문은 예외없이 「이념적」이고 「정파적」이다. 18세기 미국언론은 영국왕실로부터의 독립과 예속을 둘러싸고 분열됐으며, 독립을 쟁취한 후엔 강력한 중앙집권과 분권화를 에워싼 논쟁으로, 또 그 후엔 노예제도에 대한 찬반론으로 신문의 이념적 색깔을 뚜렷하게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이념적 언론모형에 유용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객관주의」언론이다. 불특정다수의 독자를 위해 언론의 주관적 해석과 판단을 유보한채 신속·정확한 정보만을 제공한다는 객관주의언론은 진실의 발견에는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과 함께 새로 등장한 모형이 「탐사언론」인데, 이는 기자의 주관적 해석과 수사기법을 보도에 적용하는 언론모형이다. 최근에는 이보다 새로운 「평가적 언론」이 이상적인 언론모형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앞서의 각 언론모형들로부터 장점만을 선별적으로 채용한 복합적 모델이다.

이념적 언론에서는 기자의 주관적 관점을, 객관주의언론에서는 보도의 정확성을, 탐사언론에서는 심층분석적 요소를 수용하는 차세대의 언론모형이라 일컫는다. 이러한 언론의 변화추세로 볼 때 우리 언론은 네 가지 모형이 어지럽게 혼재하는 정체불명의 언론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즉 대기업으로서의 신문이 갖는 강한 속성 때문에 주요 정치·경제현안에 대해 한국신문은 다분히 이념적 정파성을 띠고 있다. 한편 신문지면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행정부서와 관련된 기사는 보도자료를 여과없이 내보내는등 지나치게 「객관적」이다. 이에 반해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일반인에 대한 보도는 지나치게 「탐사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비행청소년의 탈선현장을 급습취재하여 방영하는 TV의 보도가 좋은 예일 것이다.

이렇듯 한국언론은 취재영역과 대상에 따라 보도자세를 달리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뉴욕타임스를 고급지로, 중국의 인민일보를 권위지라 일컫는 것은 비록 정치체제를 달리하는 두 신문이지만 주제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취재방식이나 보도방향에서 일관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두 신문에는 우리 신문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지배적 언론모형이 존재한다. 한국신문은 일과성 사건을 피상적으로 보도하는데 급급할 뿐 이슈나 추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는데 매우 소홀하다.

정보는 그 질적 수준에 따라 국민의 「알 권리」에 속하는 기사로부터 「알필요」를 충족하는 기사와 「알고 싶어하는」 욕구를 만족시키는 기사로 나눠질 수 있다. 선거보도를 예로 들자면, 입후보자의 학맥·인맥기사는 분명히 독자가 「알고 싶어 하는」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기사이며 정당의 통일정책·경제발전계획등 이슈중심의 기사는 「알 필요」에 속하는 기사가 된다. 정책이 입안되는 배경과 함께 국정전반의 맥락에서 심도있게 다룬다면 이는 「알 권리」의 범주에 속하는 기사가 된다.

최근 문민정부가 전개하고 있는 「개혁」, 「세계화」, 「역사 바로세우기」등이 주요 기사로 다뤄지고 있지만 찬반양론을 수용한 이슈로 쟁점화하지 못하고 권력중심의 지배적인 의견이 곧바로 사실보도라는 이름으로 단순화한 사건보도마냥 취급될 뿐이다. 권력에 약한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만족시킬 수 없다.

언론이 독자성을 유지하려면 고질화한 정·언유착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내야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장관과 국회의원등 정치인들이 유력한 일간지나 방송사 출신이며 언론인이라는 직업은 정계 입문의 교두보역할을 하게 되어 언론이 정치권의 무언의 동반자가 되어온 것이 현실이다. 이는 입법·행정·사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면서 선의의 적대관계를 유지해야 할 제4부로서의 역할을 스스로 파괴하는 일이다. 언론은 권력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불편부당한 자세로 독립성을 쌓아야 한다.

언론인은 숭고한 도덕률과 고도의 지식이 요구되는 전문직이다. 전문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지·인·용과 서양의 로고스, 에토스, 파토스는 오늘날 언론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다.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판단력, 그늘진 곳을 굽어보는 이타심, 불의에 저항하는 용맹성, 이 모두는 우리가 바라는 이상적 언론인상이다.<한국언론학회회장·고려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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