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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신뢰와 세가지 악(박승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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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신뢰와 세가지 악(박승서 칼럼)

입력
1996.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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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민주주의를 신봉합니다. 그래도 인류가 경험한 어느 정치제도보다도 우월하기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를 굳게 믿고 이에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에 완성품이란 없고 끊임없이 발전, 향상시켜 나가야 할 이상이요 방향일뿐이라고 함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그것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지금 15대총선을 바라보는 시민들은 매우 우울하고 비통한 심경입니다. 『당신(입후보자)은 모든 국민을 항상 바보로만 만들 수는 없다』고 함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유명한 경구입니다. 이곳 유세장이 런던 하이드 파크의 「스피커스 코너」라고 생각해 버린다면 누가 무엇이라 떠들든 걱정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나 정치지망생들의 그 외침이 국정의 대표기관을 점유키 위한 것이고 그 분들의 그 허황된 공약이 득표로 이어져 그 덕분으로 국정운영권을 손에 쥐었다면 결제할 능력도 없이 공수표를 떼어 이득을 챙긴 그까짓 파렴치범에 비유될 일이 아닐 것입니다.

정치학자들은 옛 도시국가 아테네의 민주제도가 중도에 붕괴된 큰 원인이 거듭되던 거짓 선거공약에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참으로 명심하여야 할 일입니다. 또 다른 역겨운 일은 선거철이라 하여 매일 조석으로 같은 얼굴이 언론매체에 반복 등장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정치과정 자체가 국민들을 그 분들의 실제능력보다 더 크게 카리스마적으로 유도하는 폐단이 있다곤 하지만, 그분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굳게 약속한 일들이 며칠 가지 않아 식언으로 돌아갔을 때 순진한 백성들은 등을 돌려 버리게 마련입니다. 만일 정부나 여·야 할 것없이 연일 터져 나오는 그 허다한 선거공약이 실천이라도 되는 날이면 도대체 그 거액의 재정은 누가 부담하게 된다는 것인지 그저 실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함부로 한 큰소리는 궁극에는 옛날 아테네와 같이 민주제도를 구렁텅이로 빠져들게 하는 죄악임을 깨달아 주어야 하겠습니다.

○식언이 궁극에는

또 한심한 일이 있습니다. 지역숙원사업이라는 것을 성취시켜 주는 일이 국회의원의 숭고한 사명인 듯이 지금 도처의 유세장에서 그 분들이 열을 올리면 박수부대들이 함성을 올리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선거구의 획정이란 그 선출의 기술적 방법일뿐 지역대표를 뽑는 일이 결코 아닐 것입니다. 나라가 공평하게 거두어 들인 국민의 세금을 내 고장으로 끌어 당겨 선거민의 환심을 사서 자신의 평가절상을 꾀하는 일은 국가에 대한 배신행위로 보여질 수 밖에 없겠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새로 구성된 국회개원식장은 마치 범법자군단의 축제같았다』라고 함은 어느 유명 정치인의 독백의 한 토막이었습니다. 부정선거를 이 땅에서 영원히 뿌리뽑겠다며 여·야 합의로 마련되었다는 현행 선거법은 마치 구멍뚫린 거미줄같아 여·야 야합의 작품이라는 비난마저 없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14대총선때의 「10당 5락」이 이번에는 배가 되어 「20당 15락」으로 인플레가 되었다 하니 어찌된 일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정직한 출마자들에게는 억울한 일이지만 그저 이 풍토를 고치지 못함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같은 일들은 돈을 뿌리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이 나라 유권자들과 금력으로 매수하려는 그 분들의 공범행위로서 후보자 한 쪽만을 탓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또 그 분들이 선거에서는 어찌할 수 없지만 당선만 되어 주면 지신염결(자신의 몸을 깨끗하게 함)하겠다고 한다면 이는 스스로와 국민 모두를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선거의 부정부패는 나라의 총체적 부패와 기강문란의 원흉입니다. 돈의 위력으로 당선되었을 때 그 분은 곧 돈가진 자에게 의지하고 굴복하게 마련이고 돈 가진 자는 돈의 대가를 챙기려 할 것이며 그것은 전염병같이 확산될 것임이 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도덕의 타락 큰일

더 큰 일이 또 있습니다. 어느 미래학자는 「21세기의 위기」라 하여 기아, 환경오염, 도덕의 퇴폐등 세 가지를 들었습니다. 원래 정치인은 양심은 없고 오로지 욕망만 있을뿐이라는 혹평을 받기도 합니다. 민주주의란 결국 인간의 도덕적 이상을 구현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자유, 인간존엄성, 신의 이런 것들은 모두 인간사회의 도덕적 기준인 것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우리는 허다한 도덕적 타락상을 보고 있습니다. 선거운동이 자화자찬의 희극이라지만 아무리 어리석은 백성이라도 그늘진 일이라 하여 가리거나 당치도 않는 궤변으로 지난 날을 호도하려는 부끄러운 일들이 너무나 많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민주정치가 폭력의 통치가 아니라면 선량한 국민이 납득하는 데서 신임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선거운동과정에서의 반도덕적 행동은 축구의 자살골과 같고 그것은 급기야는 민주정치에 대한 자살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올바르게 이끌어 주어야 할 때입니다.<변호사·한국법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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