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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놓친 천재들 비운의 추락(컴퓨터 50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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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놓친 천재들 비운의 추락(컴퓨터 50년:9)

입력
1996.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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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비트 OS통일 게리 킬달 IBM 못만나 쇠락길/애플사 스티브 잡스는 영입인사에 쫓겨나기도「기회를 잡아라」. 기술로 승부하는 컴퓨터산업의 역사에서도 우연히 찾아온 기회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미 디지털리서치(DR)사를 설립한 게리 킬달은 기회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역사 속에 묻힌 비운의 인물이다. 기회를 낚아채 소프트웨어의 황제에 오른 마이크로소프트(MS)사의 빌 게이츠와 좋은 대조를 보인다.

둘은 외모에 있어서도 게리 쿠퍼(게리 킬달)와 우디 앨런(빌 게이츠)에 비유될 정도로 전혀 다른 인상을 풍긴다. 공통점이라면 PC 운영체계(OS)시장을 정복했다는 것이다.

킬달이 시장을 지배하던 시기는 PC의 태동기였던 70년대말. 당시에는 미국에 컴퓨터회사가 하루에 10여개씩 생겨날 정도로 젊은 엔지니어들이 PC를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데 몰두했다. 그러나 각기 독자적인 규격으로 컴퓨터를 만들었기 때문에 호환되지 않았다. 사용자들은 다른 기종을 사용할 때마다 다시 교육을 받아야 했다.

DR의 킬달은 새로운 OS 「CP/M」을 개발, 이러한 문제를 한번에 해결했다. 2,000여개가 넘는 PC업체가 킬달의 「CP/M」을 사용했으며 79년에는 이 프로그램이 8비트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탄탄대로를 달리던 킬달이 비상의 날개를 펴지 못하고 추락한 것은 IBM PC의 출현과 관계가 깊다. IBM은 PC시장에 진출하면서 OS를 개발해 줄 소프트웨어업체를 찾고 있었다. 당시 업계표준을 장악하고 있었던 DR에 부탁하기 위해 IBM의 간부들이 캘리포니아주 몬트레이에 위치한 본사를 찾았다.

IBM 간부들이 방문한 날 게리 킬달은 자리를 비웠었다. IBM의 방문객들이 얼마나 엄청난 기회를 가져다 줄 것인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킬달을 대신해 IBM간부를 만난 부인 도로시 맥에윈 역시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 회의내용은 비밀로 해야 한다는 약속등 IBM이 제시하는 조건들을 수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계약을 거부했다. 킬달대신 기회를 잡은 빌 게이츠가 업계표준의 명예와 소프트웨어 황제의 칭호를 물려 받았다.

게리 킬달과는 다른 경우지만 애플 컴퓨터의 설립자인 스티브 잡스도 자신의 능력에 비해 운이 따라주지 않은 비운의 인물로 기억된다. 잡스는 한때 컴퓨터산업계의 모두가 주목하는 핵심인물이었다. 애플컴퓨터를 만들어 8비트시대부터 PC시장의 주역이 됐으며 PC에 그래픽사용자환경(GUI)을 실현한 매킨토시는 최대의 히트작으로 남아 있다. 80년대초 IBM PC가 돌풍을 일으켰지만 애플의 위상은 꺾이지 않았다. 기술적인 우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킨토시 사용자는 대부분 애플의 기술력을 굳게 믿는 맹신자들이었다.

잡스는 83년 펩시콜라사장 존 스컬리를 영입했다. 『아이들에게 설탕물이나 팔지 말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설득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잡스는 스컬리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나는 비운을 맞았다. 85년 자신이 공들여 키운 애플을 나와 넥스트 컴퓨터라는 워크스테이션 전문업체를 설립했다. 넥스트 워크스테이션은 탁월한 멀티미디어기능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잡스의 천재성을 다시한번 확인시켜주었다. 또 「프로그래밍의 레고 블록화」를 주장하는 객체지향기술을 처음으로 OS에 적용했다. 그러나 넥스트도 성공하지 못하고 도중하차했다. 워크스테이션사업을 포기하고 소프트웨어업체로 전환한 것이다.

잡스는 최근 영화 「토이 스토리」를 통해 화려한 재기를 꿈꾸고 있다. 86년 인수한 멀티미디어전문업체 픽사사가 컴퓨터그래픽을 맡은 이 영화는 다시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잡스의 뒤에는 컴퓨터의 역사와 함께 그가 겪었던 비운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이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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