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동연설회장 메워줘야 “이변”도 있다운동장이 진창이다. 꽃샘 비바람이 찼다. 투표일을 열흘남짓 앞두고 처음 열리는 합동연설회가 여러모로 「악조건」인데, 크지 않은 학교운동장은 그런대로 청중을 채우고 있다. 각 후보들의 운동원과 후원자들, 그들에 의해 동원된 유권자들이 대부분인 듯 하다. 뜨거운 국물이 있는 라면 우동가게도 커피 행상도 진을 쳤고, 생각밖에 취재기자들이 많지만 분위기는 날씨처럼 찼다.
진창에 구두를 적시며 운동장을 찾았던 기억은 10여년 전 2·12총선 때가 있다. 그 때 그곳도 일개 지역구의 합동연설회였는데 놀랄만한 대군중이 몰렸었다. 「열풍」이 몰아쳤다고들 했다. 그때의 총선결과는 「이변」으로 기록됐다.
운동장이 진창인 것을 두고 4·11의 합동연설회에서 2·12의 기억을 떠올렸지만, 두 현장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다. 우선 시대적 상황이 같지 않다. 겨우 겨우 운동장을 채운 「동원청중」과 제발로 걸어온 대군중의 차이도 같을 수 없다.
토요일 오후의 첫 합동연설회에서 느낀 종합적인 인상은 열기가 모자란다는 것이다. 비바람 몰아친 날씨 탓만도 아닐 것이다. 총선을 치르고 있는 정당이나 후보들이 시민의 열망을 휘어 잡을만한 뜨거운 쟁점을 제기하지 못하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여러분, 요즘 여러가지로 살기 힘드시죠?』
첫번째 연설에 나선 후보는 첫마디를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시작한다. 생활주변의 감각적인 문제에서 차츰 정치문제로 옮아가면서 「우리 사회 모든 문제의 원천」인 3김시대를 끝장내자고 주장한다. 「깨끗한 정치 능력있는 사람」이 이 후보의 표어.
『아주머니, 요즘 멸치 사보셨습니까? 멸치가 환히 웃어요. 단군이래 최고의 대접을 받아서….』
선동형의 웅변 중간에 끼어든 우스갯소리. 신랄한 정부공격에 재치와 요령이 있다. 「일등 국회의원이 되겠습니다」가 구호인 이 후보의 연설은 젊은 야심을 숨기지 않는 자기과시로 점철돼 있다. 「미스터 싱싱」이 30대초반인 이 후보의 자작 별명.
세번째 등단한 40대 후보는 『정치가 뭡니까!』를 큰소리로 외친다.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잘 살게 돕는 것이 정치라는 자답이 뒤따른다.
『안방극장 전원일기의 김회장 아무갭니다. 오늘은 기호1번으로 여기 섰습니다』
마지막으로 연설에 나선 여당후보는 낯익은 탤런트. 『전원일기 김회장을 모범으로 살아간다』고 극중인물의 이미지에 자신을 얹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잘난 정치꾼과 투사정치인, 계파정치행태」를 비판하고 교육개혁의 의지를 강조한다. 「따뜻한 사람이 큰일을 합니다」가 표어.
4인의 후보연설을 다 듣는데는 1시간30분 정도가 소요됐다. 짧은 시간이다. 4개의 주요정당 공천자가 망라된 후보들의 연설에서 정당차원의 정책공약이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은 「청문회를 열겠다」거나 「내각제를 하겠다」는 정도에 그친다. 그만큼 차별화가 되어있지 않고 경계가 불분명하다. 유권자는 결국 인물 됨됨이를 선택의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 검증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렇더라도 후보자들을 직접 보고 그 말을 듣기 위해서 합동연설회를 찾아가는 정성은 유권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민주주의는 유권자 수준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못한다는데, 우리의 민주주의를 한 걸음이라도 더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2·12, 4·26, 3·24, 6·27등 지나간 선거들이 연출해냈던 「이변」이 4·11에도 연출될 것인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유권자들은 우선 합동연설회장을 메워주는 정성을 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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