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감칠 맛을 느끼려면 역시 유세장에 가야 한다. 후보자의 열변, 환호와 야유, 그리고 연설회장 한 귀퉁이를 차지한 포장마차 등은 선거 분위기를 한껏 맛볼 수 있게 해준다.31일 무악동 대신고교에서 열린 종로의 합동연설회도 그랬다. 인근의 독립문 사거리는 인파와 차량으로 메워졌고 연설회장 입구는 지지를 호소하는 선거운동원들의 합창으로 왁자지껄했다. 「정치 1번지」답게 후보자들의 연설도 각을 이루고 있어 청중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던 후보들의 약점, 전력이 드러나고 기라성같은 거물후보들이 한표를 읍소할 때면 청중들은 예민한 시선을 단상으로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연설회장에서 뭔가 빠진 「그림」이 있었다. 독설과 능변, 동원된 청중의 함성은 있었지만 일반 청중들의 박수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한 후보가 큰 절을 했지만 박수도, 웃음도 없었다. 상대후보를 신랄하게 비난하는 대목에서도, 자신의 업적을 화려하게 채색하는 대목에서도 단하의 청중 사이에는 싸늘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연설회장을 내리 누르는 침묵의 이유는 무엇인가. 그 해답은 한 후보자의 연설에서 잘 나타나고 있었다. 『국회의원이 되려고 약자의 편에 서는 척 하지말자, 약자를 힘있게 돕기위해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자』는 그의 말처럼 청중들은 후보자의 미사여구를 「거짓말」로 치부하고 있는 듯했다. 어떤 후보자가 마치 종로를 「낙원」으로 탈바꿈시킬듯이 엄청난 공약을 늘어놓자 운동장 저 뒤편의 한 노인은 『저 소리를 30년도 넘게 들었지…』라고 일소에 부쳤다.
뜨거운 단상, 차가운 단하로 대비되는 합동연설회장의 한쪽 편에서는 청소년들이 열심히 농구를 하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확성기의 소리에도 아랑곳 없이 농구에만 전념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당신들의 연설은 허구』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듯 했다.<이영성 기자>이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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