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전통산수화의 큰산맥에 안긴다/미공개작 50여점 한자리에 총체적예술세계 재조명/수묵채색의 독특한 화풍에 담은 한국의 자연미 “정감”의재 허백련(1891∼1977)과 함께 호남 전통산수화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남농 허건(남농 1907∼87)의 미공개작이 한 자리에 모인다. 작고 9주기를 맞아 4월2∼15일 세종화랑(027222211)이 마련하는 「남농 허 건전」은 한국화에서 독창적 화풍을 연 고인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자리이다. 전시회에는 30년대부터 타계직전까지 제작한 미공개작 50여점이 출품된다.
남도화맥의 길을 개척한 소치 허연(소치 1808∼93)의 손자인 그가 중국산수화풍인 남종화의 전통을 벗어나 수묵채색의 독특한 화풍을 다듬어가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이다.
남농화풍은 그의 부친이자 스승인 미산 허형(미산 1862∼1938)의 화법을 추종했던 초기, 40년대부터 70년대까지 경쾌하고 속도감있는 필치로 절정을 이루었던 중기, 필선의 단순화와 생략을 통해 압축된 화면이 두드러진 후기로 나누어진다.
일제강점기 선전에서 14차례 연속 입선, 독창적 산수화의 세계를 구축해간 그는 가난과 신체적 부자유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가로 성장했다. 엄동설한에 방안에 쪼그리고 앉아 그림을 그리다가 동상에 걸린 그는 치료비가 없어 다리를 절단해야 했고 이러한 시련은 그림에만 몰두하는 계가가 됐다.
그가 중국 남종화풍의 굴레에서 뛰쳐나와 우리의 향토풍경을 소재로 실경산수의 창조적 화풍을 보여주기 시작한 시기는 해방되던 45년부터. 그는 거칠고 강렬한 필선과 세필의 사용, 담채효과를 토대로 한국의 자연미를 집중 탐색했다. 의재가 고답적인 정신미를 강조한 남종화풍에 충실한 반면 남농은 한국 고유의 가옥과 산수를 소재로 새 화맥을 구축한 것이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생명력과 시골의 구수한 정감을 화려한 색채로 표현한 그의 화풍은 한국화의 큰 흐름으로 자리잡았다.
출품작 중 「성산포실경」 (47년), 「정담」(49년), 「운림산방실경」(55년), 「추강무진도(추강무진도)」(60년대초), 「매송도」(60년) 등은 중기의 수작으로 꼽힌다. 자연풍광을 초가, 기와집과 연결시킨 「성산포실경」과 「운림산방실경」은 남농을 대가로 올려놓은 작품이다. 100일 동안 심혈을 기울인 「추강무진도」, 소나무와 붉은 매화를 그린 「매송도」는 그의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준다. 국전 초대작가와 추천작가를 지내면서도 60여년 동안 목포를 지켰던 그는 조방원 신영복 이옥성씨등 100여명의 제자를 배출했고 현재는 친손자인 허진 전남대교수가 화맥을 잇고 있다.
미술평론가 이구열씨(한국근대미술연구소장)는 『남농의 총체적 예술세계와 인간적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라고 말했다.<최진환 기자>최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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