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불안정한 의식속 참상 재연/시민 2만명 참가 등 숱한 화제 남겨입고 있는 옷처럼 정신이 누더기가 된 소녀가 있다. 떠돌아다니며 뭇남자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그의 의식은 지옥에 가 있다. 총소리,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 죽어가는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자신을 달아나게 했던 공포와 전율….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 「꽃잎」(장선우 감독)이 4월5일 개봉된다. 「꽃잎」은 소재가 주는 무게 외에도 2만여 광주시민들이 동참해 당시의 모습을 재현했고, 영화가 완성되기 전 영국 미라맥스사에 의한 세계배급으로 48억원의 수입이 보장되는 등 많은 화제를 낳은 작품이다.
최윤씨의 소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가 원작으로 광주의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충격으로 미쳐버린 소녀의 이야기이다. 장선우 감독은 소녀의 불안정한 의식 속에서 광주의 참상을 재연하고, 그에게 퍼부어지는 주변의 폭력을 통해 무책임한 가해자의 세계를 그리려 했다.
『소재의 중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웃기는 장면을 일부러 집어넣었다』는 장감독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무겁고 슬프다. 의식의 흐름을 표현한 애니메이션, 소녀의 눈에 떠오르는 소름끼치는 귀신의 환영 등 만화적인 요소들조차 그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는 듯하다.
명암이 뚜렷한 흑백화면으로 반복되는 총격 현장은 엄마 역을 맡은 이영란의 섬뜩한 연기에 의해 높은 사실성을 얻고 있다. 그러나 잦은 흑백영상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오래된 사진첩 속의 옛이야기처럼 보이게 할 위험성도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소녀 역을 맡은 신인 이정현(16·서울 명덕여고 2년)이다. 과거를 응시하는 초점 잃은 눈, 공동묘지에서 신들린채 나누는 넋들과의 대화, 그를 겁탈하려는 장씨(문성근 분) 앞에서 자해하는 모습 등에서 그의 연기에 대한 열정을 읽을 수 있다.
신중현이 작곡·작사해 1971년 김추자가 발표했던 노래 「꽃잎」이 원곡 그대로 영화에 사용되었다. 요즘 감각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이 노래는 영화의 흥행에 따라 다시 빛을 볼 가능성도 있다.
4·11총선의 열기가 최고조에 오를 무렵, 그리고 5·18의 주역들이 역사적 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선보이는 이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이 궁금하다.<권오현 기자>권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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