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곁들인 건강한 문장에 담아90년대 문단에서는 보기 드문 주제의식으로 승부를 걸려는 젊은 소설가 두 사람의 소설집이 나란히 선보였다. 등단하고 몇 년 되지 않은 사이에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하고 있는 김소진씨(33)의 「자전거 도둑」(강간)과 한창훈씨(33)의 첫 소설집 「바다가 아름다운 이유」(솔간). 이들의 소설은 영토는 다르지만 가난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들의 박탈감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 속에 잠겨있는 해학을 건져 올리려는 노력이 한결같이 돋보인다.
작품집으로 「열린사회와 그 적들」 「고아떤 뺑덕어멈」을, 연작장편으로 「장석조네 사람들」을 펴낸 김소진씨는 이번 소설집으로 지난 4년 동안 매년 평균 1권의 작품집을 출간한 셈이 됐다. 올해 「작가세계」 봄호에 전재한 중장편 「양파」도 곧 단행본으로 나올 예정이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9편의 단편은 아버지와 연관된 유년의 추억을 더듬는 노력이 대종을 이룬다. 『아버지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세상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그는 가난하고 불쌍한 아버지의 모습에서 빈곤한 우리 사회의 한 모습을 발견한다.
도둑질을 하다 자식에게 누명을 씌우는 처지로 몰리는 아버지, 아들의 학비를 계집질에 써버리는 가난하고 무능한 아버지의 모습은 소설에 등장하는 「나」의 처지와 끊임없이 중첩된다. 작가나 기자로 등장하는 주인공들 역시 그 아비처럼 물질적이거나 정신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몰려 있다. 그런 처지를 도덕적 정당성을 갖고 넘어서기 위한 고민이 소설의 저변에 흐른다.
김씨의 소설이 가족사의 여러문제를 다룬데 비해 한창훈씨는 다양한 하층민의 삶을 제3자의 시선으로 그려낸다. 객관적인 자리에서 씌어진 한씨의 소설은 희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최근의 소설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하지만 농촌 아낙인 음암댁, 뱃사람 몽이, 떠돌이 장사꾼 용표, 도시빈민 소라댁, 부랑자 황씨 노인 등 낮은 자리에 있는 이들의 모습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그의 소설은 값지다고 할 수 있다. 빼앗긴 이들의 곤핍한 삶을 다루면서도 그들사이의 연대의식, 일상에서 솟아나는 갖은 해학을 곁들여 소설은 건강함을 잃지 않고 있다. 더구나 입담 좋다고 표현해야 적절할 그의 유장한 문체는 신예답지 않은 역량을 느끼게 한다.<김범수 기자>김범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