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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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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6.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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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쉬워서 기증이지, 평생 모은 재산을 자선사업기관에 헌납하는 일이 어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더구나 너무 늙어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거나 죽을 병이 들었다면 모르되 아직도 앞이 창창한 나이에 그런 결심을 한다는 것은 범인이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동유럽 붕괴때 「시민 포럼」을 이끌고 체코에 무혈의 「벨벳혁명」을 성공시킨 세계적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 대통령은 올해 꼭 60세가 됐다. 그는 최근 리도베 노비니라는 한 체코신문과의 회견에서 이제까지 저축한 돈과 조부로부터 상속한 재산 전부를 신탁기금에 내놓아 이 기금의 운영수익을 자선사업에 쓰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재산에는 희곡작품을 비롯, 활발한 저술활동 수입과 상금, 봉급을 저축한 것이 일부 포함되지만 대부분은 공산정권 때 몰수됐다가 민주화되면서 되찾은 상속재산으로, 이를 모두 정리해 합치면 우리 돈으로 수십억원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렇게 부자이면서도 대통령관저에서 살지 않고 프라하에 있는 조그만 사가에서 경호원도 없이 출퇴근하며 생활해 왔다. ◆대통령 봉급 10만코루나(약3백30만원)도 반드시 직무와 관련된 일에만 쓰고 나머지는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했는데 작년 한해동안 자선사업에 희사한 돈이 1억5천만원쯤 된다고 한다. 그가 재산을 정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지난 1월에 암으로 죽은 아내의 뜻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고 전해졌지만, 그 자신 무소유의 의미에 대한 깨달음과 강인한 실천의지가 없고서는 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을 잘 만나는 일은 국민의 행운이다. 정치지도자의 수준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에 다름아니라는 말도 그럴 듯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체념하기는 너무 쓸쓸하다. 우리에게도 무소유의 즐거움과 명예를 아는 현인대통령이 나타났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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