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사상의 뿌리서 주민자치 실천방안까지/생태학자 문순홍 박사와의 160여개 질문·답변 수록/“죽임의 문명 한복판서 생명의 싹 틔우는 씨앗 기대”시인이자 생명운동가로 활동해온 김지하씨가 환경파괴를 비롯, 생태계뿐 아니라 전 생명계가 위협받고 있는 현시점에서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게하는 대담집 「생명과 자치」(솔출판사간)를 내놓았다. 생태학자 문순홍 박사(생태학연구소장)와의 대담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그의 생명사상의 뿌리와 생명운동을 설명하고 주민자치의 구체적 실천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70년대 중반 인혁당 고문사실 폭로와 옥중메모사건으로 옥살이를 하던 김씨는 벽이 다가드는 것같은 압박감을 느끼는 벽면증에 시달리는등 실존적 위기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쇠창살과 시멘트창턱 사이의 틈에서 싹을 틔운 개가죽나무라는 풀을 보고 감동과 희열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 감옥에서 싹튼 「생명」이라는 화두를 생명에 대한 사상적 패러다임과 시민실천운동으로, 지방자치로까지 확대발전시킨 김씨의 생명운동에 대한 20여년의 여정이 160개 질문에 대한 가감없는 답변에 담겨 있다.
「생명과…」는 지난 여름의 삼풍참사에 관한 논의로 시작한다. 삼풍참사는 생명가치 중심의 세계관이 아닌 경제가치 중심으로 전도된 사회, 현문명의 한 단면이라고 주장하며 근본적인 생태학운동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김씨는 생명의 정의에 대해 기존의 유기물과 무기물의 구분을 무시하고 상호통신으로 비약적 차원변화를 한다는 점에서 복제능력이 없더라도 진동, 순환, 팽창, 생성하는 모든 것은 영성적 생명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생명사상이 동학에 기초를 둔 것과 마찬가지로 운동방식도 동학에서 찾는다. 생명운동이란 「죽임」에 대한 「살림」이라고 말하는 그는 주민자치의 형식을 통해 생명운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구체적 모델을 19세기후반 동학의 포접운동에서 찾고 있다. 풀뿌리주민들이 이루어나가는 풀뿌리자치로서의 주민자치는 개인의 개별성을 존중하면서 네트워크를 통해 각각의 그물코들이 모여 하나의 그물을 이루는 것이 김씨가 말하는 이상적인 형태이다.
고문후유증으로 아직도 몸이 불편한 김씨는 녹음형식으로 대담을 진행했는데 한때 출간을 포기했으나 출판사에서 5∼6개월간 원고로 정리, 빛을 보게 됐다. 김씨는 94년부터 이끌고 있는 「생명가치를 찾는 민초들의 모임」(생명민회)을 통해 생명문화운동을 더 활발하게 추진할 계획이며 출간을 기념해 세미나도 열 계획이다. 김씨는 『이 책이 쇠창살의 흙먼지에서 싹을 틔운 개가죽나무같이 죽임의 문명 한 가운데서 생명의 싹을 틔우는 씨앗이 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하」라는 이름으로 고생만 했기 때문에 신물이 날 정도여서 당초 이 책 출간과 함께 이름을 「형」(물 맑을형), 자호를 「형산」으로 쓰려 했다가 다시 마음을 바꿔 「지하」와 「형」을 함께 사용하기로 했다.<여동은 기자>여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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