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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도와 고 최병우 기자/유동희 국제1부 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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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도와 고 최병우 기자/유동희 국제1부 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6.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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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도(진먼다오)는 두 얼굴을 하고 있다. 하나는 중국 대륙을 지척에 둔 대만의 최전선 요새로서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관광지로서의 모습이다.인근 해역에서 중국군의 대규모 상륙훈련이 개시될 것으로 예고된 18일 금문도는 관광지로서의 모습을 완전히 잃어 버렸다.

이날 취재중 들러 본 금문도의 몇몇 관광명소에서도 관광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자를 안내한 금문도 주민은 『관광객은 썰물처럼 빠져 나갔고 기자들만 찾아오는 곳이 됐다』고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대만의 최전선 요새로서 금문도의 존재를 세계에 뚜렷이 각인시켜주었던 사건은 58년 금문도 포격전이었다. 그 해 8월 23일부터 45일간 중국군과 대만군간에 계속된 이 포격전을 취재하다 한국 대만 일본 3국 기자 5명이 숨졌고 이중에는 한국일보 특파원 최병우기자도 포함돼 있다.

포격전 30주년을 기념해 88년 세워졌다는 「팔이삼전사관」에는 고 최병우특파원의 모습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순직할 당시의 35세 젊은 모습을 담은 사진과 약력, 그리고 순직경위 등이 치열한 취재혼을 지녔던 한 기자의 짧은 생애를 잘 요약하고 있었다.

약력을 소개한 글 중 「용감솔직(용감하고 솔직했다)」이란, 그의 성격을 표현한 글귀가 눈에 들어 오면서 기록을 통해 단편적으로 접했던 고인의 생전의 면모가 어렴풋이 가슴에 다가왔다.

기념관 밖으로 나서자 인근 연병장에서 훈련을 하는 대만군 병사의 고함소리가 우렁찬 가운데 낮게 드리운 구름을 뚫고 전투기의 굉음이 들려왔다. 오늘의 이 긴장이 수천발의 포탄이 오고 갔던, 그래서 죽음이 도처에 널렸던 38년전의 긴장상태와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양안 위기가 재현되고 있는 것만은 실감할 수 있었다. 관광지로서만 남아 있을 수 없는 금문도의 숙명이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금문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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