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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음악회」 유감/탁계석 음악평론가(탁계석의 음악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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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음악회」 유감/탁계석 음악평론가(탁계석의 음악노트)

입력
1996.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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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가 개교 5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추진 중인 KBS 「열린음악회」가 서울대 음대교수들의 반대에 부딪치면서 클래식과 대중음악 논쟁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클래식 비중을 높여 아카데미즘의 상징인 학문의 전당에 걸맞은 최소한의 분위기를 지켜달라는 음대교수측의 요구에 대해 방송사측에서는 청와대 안기부 김수환추기경의 열린음악회 참여를 거론, 대중음악에 대한 무시라며 수긍할 수 없다는 자세다.여기에 일반의 정서 또한 열린 음악회야말로 곧 국민음악회인데 「우리를 무시하느냐」 「별스럽게 잘난 척 한다」는 것 쯤으로 반감을 나타내고 있어 이를 설명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음악의 특성을 이해하기에 앞서 「클래식, 대중음악」의 이분법적 피해 논리만 앞세워 음악에 귀천이 있느냐고 한다면 더 할말이 없어진다.

그러나 음악은 쓰임에 따라 형식과 구성, 연주법, 악기편성, 창법, 연주공간의 크기는 물론 감상법에도 차이가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모든 음악이 같을 수 없고 쓰임에 따라 선택되는 것인데 막강한 방송의 위력으로 균형없이 특정 음악만을 사회화하는 현상은 국민을 가볍게 생각하는 계도적 자세요 성숙한 방송이 취할 바가 아니라고 본다.

예배음악을 댄스뮤직이, 사기를 돋우는 행진곡을 재즈가 대신할 수 없다. 모심기하며 부르는 농요는 그 자체로 작곡가의 창작음악을 뛰어 넘는 순수성과 예술성의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다. 음악은 여흥에 겨워 손뼉치며 함께 즐기는 게 있는가 하면 한 음 한 음 놓치지 않고 집중해 들어야 하는 곡도 얼마든지 있다. 이 선택권을 방송이 지나치게 한 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위험하다.

그동안 장르간 갈등 해소와 전가족 참여의 「시청 민주화」프로그램으로 열린음악회가 평가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품격유지」의 약속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내용은 변질되어 갔다. 성악가는 들러리로 모양새가 궁핍해 보였고 그나마 출연자는 한정됐다. 귀 열린 사람이라면 고통을 느끼는 오케스트라 반주는 국민에게 클래식에 대한 오해를 심어주기에 이르렀다. 열린 음악회가 인기를 끌면서 TV에서 클래식 프로그램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때문에 대중음악 무시 운운은 어울리지 않는다.

음악 특성상 유흥보다 정서쪽을 선택하는 것이 그리도 잘못된 것인가. 선진방송을 지향하는 겸허한 자세와 여유, 위상다듬기 작업이 필요한 때가 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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