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통장없는 여자(장명수 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통장없는 여자(장명수 칼럼)

입력
1996.03.20 00:00
0 0

한 부인이 말했다.『나도 내 돈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디다 얼마를 써야겠다고 하면 남편이 두말없이 돈을 주지만, 결재를 받지않고 쓸 수 있는 내 돈이 없다는게 섭섭할때가 있어요. 남편 보약을 한제 짓더라도 내 돈으로 짓는것과 남편한테 타서 짓는것은 다르잖아요. 그런데 남편은 내 기분을 이해못해요. 무슨 큰 재산이 있다고 내 돈 네 돈 하느냐는 거예요』

그 자리에 있던 부인들은 그가 자기이름으로 된 은행통장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그래서 일제히 그를 부추겼다.

『자기 통장 하나 없는 여자가 요새 어디 있어요. 남편에게 통장을 하나 갖고싶다고 말하고, 목돈을 달라고 하세요. 자기 돈이 있어야 해요. 울적할때 훌쩍 여행이라도 떠날까 상상하는 것도 내 돈이 없으면 못하는 거예요』

아내의 통장을 열기위해 남편에게 요구할 목돈은 얼마가 적당할까. 오십평생 주부노릇을 열심히 했으니 500만원은 타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으나, 갑자기 큰돈을 내놓으라면 남편이 놀랄것이므로 200만원이 좋겠다고 다른 사람이 말했다. 상징적으로 내돈을 갖겠다는 것이니 50만원이면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나왔다.

그런데 듣고만 있던 한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통장없는 부인이 부러워요. 주부가 한평생 남편에게 돈을 타서 살아왔다는 것은 가정경제를 전적으로 남편이 책임졌다는 말인데, 나는 그렇지 못했거든요. 남편이 돈을 벌긴 했지만, 아이들 공부시키고 저축하여 집사고 하는일은 모두 내가 꾸려왔어요. 사실 우리나라 남편들이 대부분 아내에게 월급을 봉투째 맡기는것은 그 돈으로 가계를 끌어나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금융실명제가 시행되었을때 어떤 남편들은 아내의 통장에 들어있는 엄청난 액수의 「아내 돈」에 놀랐다. 전업주부의 통장에 들어있는 돈중에서 얼마까지를 세금없이 실명화해줄것인가 라는 논란이 벌어졌을만큼 돈 많은 주부들이 많았던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통가정에서 남편 돈 아내 돈의 구별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자기 통장없이 살아온 주부와 자기 통장을 가진 주부가 서로를 부러워하는것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아내가 내 통장, 내 돈을 따로 갖고 싶어한다면 남편은 그 심리를 이해해야 한다. 얼마의 목돈을 넣은 통장을 아내에게 선물하는것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다.<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