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선거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만큼 부동표가 많은 선거도 없다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지금도 30%에서 70%에 가까운 유권자가 결정을 못하고 있다고 하니 말이다.모든 정당이 중산층의 마음을 잡으려 하고 있고 서로가 경쟁이라도 하듯 보수색깔을 내세운다. 이념 뿐이 아니다. 각 당의 정책에도 차이를 찾아 볼 수 없다. 대변인의 입을 통한 니전투구는 듣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여기다 기존정치에 대한 불신마저 겹쳐 「지역」이라는 상수적 요인 하나를 빼면 이번 선거야말로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가 될 것 같다. 정치가의 수준이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하지만 국민이 바라는 것은 대체로 상식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다. 국민은 안팎의 어떠한 위기에도 나라의 안전보장을 굳건히 지키고 경제생활을 중심으로 국민의 편안한 삶을 보장하는 정당, 말하자면 믿을만한 정치세력을 찾고 있을 뿐이다. 거기다 하나 더 추가한다면 워낙 권력형 부패에 찌든 국민이라 그 어느 때보다 정치인의 도덕성을 요구하고 있는 점이다.
3김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지만 그것도 따지고 보면 3김의 정치가로서의 역량 자체를 무시한다기보다는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적지 않은 무이념, 무정책 정치인들에 대한 비판인 경우가 많다. 이들 가운데는 과연 국사를 맡겨도 될까 싶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가려내야 한다. 그리고 이른바 차세대 지도자들은 3김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야 한다. 대선에 출마한다는 선언으로 위상을 올리는 데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향후 5∼10년간의 한국정치에 대한 구상을 가지고 국민을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세가지 선택기준
지난 10여년간 대선이나 총선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뭐니뭐니 해도 지역주의였다. 우리의 현실에서 지금 당장 지역주의를 해소할 수 있는 묘안은 없다. 어쩌면 이번 총선에서는 더욱 노골적인 형태로 지역주의가 표출될지 모른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차선의 선택은 인물중심의 선거이며 설령 지역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라도 정당보다는 인물중심으로 상대적으로 비교우위에 있는 사람을 뽑는 것이다. 일단 우수한 인물을 뽑아 놓으면 그들이 전체적으로 한국정치의 수준을 높이는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인물을 뽑을 것인가? 우선 첫째 지식과 정보의 시대에 걸맞은 인물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21세기 한국을 정보화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는 식견이 있어야 한다. 거기다 전문적 경험이나 정치·행정의 경륜까지 있으면 더욱 좋다. 이 말은 결코 높은 학력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학력과 식견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과도기에는 가끔 식견과는 거리가 먼 건달들이 국회의원도 되고 목청을 높인 때가 있었다. 그러나 선진국을 앞에 둔 한국을 무정견한 정치꾼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둘째 통일에 대한 철학과 국가안보에 대한 투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통일철학은 통일을 구체적 정책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한국에 대한 나름의 비전을 말하는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틀을 마련한 한국의 다음 과제는 통일한국의 설계와 시공이라는 자각을 모든 정치인들이 공유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북한이라는 상대가 있는 일이라 대한민국의 안보라는 현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한국의 정치인은 통일의 철학과 안보의 현실을 조정할 수 있는 역량과 문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셋째 경제를 중심으로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진력할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잘 먹고 잘 산다」는 통속적인 말이 쓰이고 있지만 결국 정치도 사회구성원의 양질의 삶을 향유하기 위한 편의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 다름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일상적 삶에 최우선 순위의 관심을 돌려야 한다.
○이력서를 자세히
후보자의 식견을 알아보기 위해서 이력서를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무내용하고 허황된 이력을 많이 늘어놓은 사람일수록 대체로 건달이 많다. 시대착오적인 이념논쟁을 일삼거나 낭만적인 민족론에 안주하고 있는 사람에게서는 참다운 의미의 통일·안보에 대한 신념을 찾아 볼 수 없다. 삶의 질을 위해 일하겠다고 하지 않는 후보가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실제로 문화, 환경, 복지등 국민생활의 질의 향상을 위해 다년간 몸을 던진 후보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유권자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누가 상대적으로 좋은 후보자인지 가려내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국민의 작은 관심이 국가의 대운을 좌우한다.<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장>고려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