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절차 꼼꼼히 기록 민속자료 가치도「학생부군신위」는 장례식에서 실제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일종의 엄숙주의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던 갖가지 해프닝과 사건들을 경쾌하게 다룬다. 우리가 살고있는 일상의 희비극들이 짧은 시간 동안 강렬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삶과 죽음의 교차방식은 특히 흥미롭다. 박노인(최성 분)의 죽음과 출산을 앞둔 둘째 며느리(방은진 분)가 대비되면서, 돼지 세마리를 잡는 과정이 상세히 묘사된다. 그 가운데 5일장으로 치러지는 장례식은 박철수감독의 말대로 5일 장터가 된다.
반면 장례절차가 매우 꼼꼼히 기록되고 있기 때문에 이 영화는 시간이 흐르면 민속 교과자료로도 사용될 수 있을 듯하다.
무대는 경남 합천. 전두환 전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 합천을 배경으로 삼게되면서 이 영화는 예기치 않았던 뜻밖의 수확, 즉 관객들로 하여금 현재의 정치적 관심사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학생부군신위」란 「평범한 사람(학생)의 죽음앞」이라는 뜻. 그러나 평범하다고 해도 어느 누구의 죽음인들 사연을 갖지 않은 것이 있으랴. 박노인 역시 마찬가지다. 상당한 토지를 갖고 있었으나 사기를 당해 몰락한 이 노인에게는 잘난 인물 때문에 다른 곳에서 본 어린 아들 바우(김봉규 분)가 있다. 또 읍내 다방아가씨들과도 만만찮은 인연을 쌓았다.
장례식이 장터가 되는 중요한 이유중의 하나가 바로 이들 때문인데 특히 소년의 시선으로 포착된 장례식에 참석한 어른들의 부조리함은 이 영화에 독특성을 부여했다.
장례식을 패션쇼 정도로 착각하고 풍성한 검은 한복을 입고 도착한 큰며느리, 오빠 장례식에 와 보험세일에 열심인 여동생,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박노인의 이복동생(김일우 분)과 사진찍기에 열심인 그의 아내도 있다.
드물게 한국영화에 동시다발적인 사건들과 다중의 인물을 소개한 이 영화는 많은 조연들을 적절하게 활용해 현실감 나게 슬프면서도 흥청망청한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이제껏 소위 충무로에서 홀대받아왔던 훌륭한 연기자들의 흥겨운 한풀이며, 이런 연기와 매우 꼼꼼히 구상됐으면서도 현장의 생기발랄한 즉흥성을 이끌어낸 감독의 연출력은 칭찬받을 만 하다.<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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