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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관의 이중성/김병국 고려대교수·정치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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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관의 이중성/김병국 고려대교수·정치학(한국논단)

입력
1996.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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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 저 편에서 시위중이던 동독인이 서독을 향해 외쳤다. 「우리는 하나다」. 그러자 서독국민은 자기네끼리 수군댔다. 「그래 우리는 하나야」』통일이 현실로 막 다가온 89년 가을부터 서독인이 서로 주고 받은 농담이다. 동독의 시위군중이 외쳤다는 「우리」는 동서독을 통틀어 가리켰다. 장벽 너머의 형제와 연대하여 자유를 되찾고 시장경제에 동참하려는 시민혁명의 정신이 그 「우리」라는 말 속에 담겨 있었다. 반면에 서독인이 중얼거렸다는 「우리」는 서독인만의 「우리」였다. 민족이라는 명분 때문에 공개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결과가 불확실한 통일을 모험하기보다 분단이라는 안락한 현재에 안주하는 것이 사회안정과 경제성장이라는 실리를 보장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서독은 결국 평화적 통일의 신화를 창조해냈다. 평범한 소시민이 동독인에 대해 품고 있던 이중적 감정을 스스로 이겨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통일의 주체는 서독의 기민당정부였다. 국가의 장래가 걸린 동독문제에 관해서는 이중적인 국민여론이 적기에 적절한 정책을 제시해 줄 수 없다고 판단한 정부가 수동적 여론수렴보다 능동적 여론형성에 나선 결과가 독일의 통일이라는 진단이다.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인 한국의 소시민 역시 북한과 관련하여 이중성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한국전쟁의 쓰라린 경험 때문에 그 이중성은 단순한 명분과 경제적 실리 차원의 갈등이 아니다. 동독은 그나마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나라였다. 서독을 배제하고서는 살아 남을 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먼저 서독과의 공존을 제시한 이성적 국가였다. 북한은 전혀 다른 김정일의 세계 속에 갇혀 있다. 핵을 담보로 원조를 얻어내려는 무모한 체제이고 테러와 학살의 정치로 민심을 통제하려는 무지한 정권이다. 게다가 한국과 미국을 이간질시켜 적화통일의 기회를 포착하려는 얄팍한 속셈까지 갖고 있다.

○지원론과 고사론

그러다보니 한국은 북한과 관련해서는 강경파와 온건파가 따로 없는 기이한 사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개개 한국인의 마음 속마다 양자의 논리가 병존한다. 식량난에 처한 북한인민이 불쌍하고 김정일체제의 붕괴에 따를 혼란이 두려워서 「북한지원론」에 귀를 기울이면 즉각 마음 한 구석에서 「북한고사론」이 반격의 기회를 엿본다. 테러와 착취를 일삼아 온 야만스러운 체제에 살 길을 열어준다는 발상 자체가 역겨운 것이다. 아울러 원조가 군사적 목적에 쓰여 언제 우리를 겨냥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가세하여 북한지원론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게다가 김정일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제공하면 분단이 고착화하리라는 우려마저 한국인을 억누른다.

하지만 춘궁기의 식량난을 방관하다가는 김정일의 북한이 최후의 발악을 할 지 모른다는 안보적 위기의식에다 가여운 인민만 굶주림에 허덕인다는 동포애까지 가세하면 북한고사론에 대한 한국인의 의지는 어느 사이에 허물어진다. 게다가 탈북러시가 이어질 때 한국이 짊어져야 할 경제적 부담까지 고려하면 북한고사론은 재건할 수 없는 상태로까지 산산조각나고 만다.

한국인은 이중적인 북한관의 포로이다. 통일의 명분과 안정의 실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북한지원론과 북한고사론 사이를 방황한다. 그러한 심리적 상태에서 장기적 비전과 전략이 나올리 만무하다. 오히려 정부가 비판적 여론에 밀려 강경과 온건 사이를 몇 차례 오가다 나중에는 여론의 질책이 두려워 아예 대북한정책에서 손을 놓고 방관자세를 취할 위험성이 높다.

○이제 선택의 시점

역설적이지만 한국인이 이처럼 비전과 전략없이도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북한의 인민에게 먹을 것만은 보장한 김일성 「덕분」이었다. 북한경제가 파산하지 않는한 한국인은 이중성 속에서―다시 말하면 북한문제에 대한 분명한 선택을 무한정 연기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문제의 회피를 더 이상 불가능하게 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이 춘궁기까지는 버틸 군량미를 비축해두고 있다고 정부가 말한 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반년이 지나 이제 그 최종 기한이 현재로 다가와 있다.

무언가를 선택할 시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선택을 내리려 하지 않는다. 안정과 통일을 다 보장하고 북한지원론과 북한고사론의 위험성을 모두 피할 「샛길」을 다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 부재는 식량난에 처한 상대방에게 선택의 연기가 아니라 북한고사론으로 비칠 수 있다. 우리는 선택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선택을 내린 셈이 되는 것이다. 다시 원점에서 치밀하게 생각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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