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계 연기력 뒤진다는 기존관념 꼭 깨뜨리겠어요”/줄리아드서 성악전공… 남편 권유로 재기/주위 우려불구 1,000대 1 경쟁뚫고 발탁15일부터 시연에 들어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왕과 나」에서 첫번째 왕비 티앵역을 맡은 이태원씨(29)는 줄리아드에서 메조 소프라노를 전공한 클래식 성악가다. 이씨는 오페라등 클래식 분야에서 쌓은 탄탄한 실력과 경험을 무기삼아 세계 뮤지컬의 본고장인 브로드웨이 데뷔 준비에 여념이 없다.
율 브리너가 주연한 영화로도 널리 알려진 「왕과 나」는 19세기 태국이 무대이기 때문에 아시아계 음악인들에게 적합한 뮤지컬로 손꼽힌다. 특히 그가 분한 티앵역은 정식 왕비이면서도 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비련의 여인으로 동양여성의 섬세함이 연기의 핵심이다. 수많은 여자를 거느린 남편을 진정으로 섬기는 조강지처이자 아들을 훌륭한 왕으로 키우는 강인함도 필요하다.
애틀랜타에서 사업을 하는 김해천씨(36)와 89년 결혼한 이씨는 92년 줄리아드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음악보다는 내조에 힘썼다. 그러다 아내의 재능을 아낀 남편의 거듭된 권유로 93년 피바디음대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에 입학, 오페라를 배우던 중 지난해 6월 담당교수의 소개로 배우공모에 응했다. 7차례의 오디션끝에 지난 1월말 최종 발탁된 그는 연습을 시작하면서 자신이 1,000대 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사실을 알았다. 제작사인 다저 프로덕션이 줄리아드와 맨해튼음대 등에 다니는 아시아계 학생들을 상대로 오디션을 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씨가 음악을 택한 것도 의외였다. 중3때인 81년 미국에 온 그는 비행사가 되기위해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시민권이 없어 사관학교 입학이 불가능하자 고3때부터 성악에 매달렸다. 목사인 아버지 이종화씨(57)의 영향으로 찬송가를 즐겨 부른 그는 6개월 공부끝에 명문 줄리아드에 입학했다.
이씨는 지난해 9월 미국에서 4년마다 열리는 마리안 앤더슨 국제대회에서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동상을 받는 등 클래식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성악가가 뮤지컬을 하면 제 목소리를 잃게 된다는 지적도 있지만 연기를 충실히 배울 수 있는 장점 때문에 앞으로도 이를 병행할 생각이다.
하루 12시간의 맹연습에 돌입하고서야 오페라든 뮤지컬이든 프로가 돼야 한다고 깨달았다는 이씨는 『아시아계는 연기력이 떨어진다는 기존관념을 깨뜨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한다. 「왕과 나」는 4월15일부터 닐 사이먼 극장 무대에 올려진다.<뉴욕=이종수 특파원>뉴욕=이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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