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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예술의 관계/조성진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공연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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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예술의 관계/조성진 예술의 전당 예술감독(공연읽기)

입력
1996.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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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문화에 관한 논란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어찌보면 그러한 논란이 새삼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언제는 문화에 돈이 필요없었던가? 돈이 있어야 여유가 생기고 여유가 있어야 문화가 생긴다는 것은 상식이다. 근대문화의 기초가 된 르네상스는 바로 이탈리아 상인들이 일으킨 것이 아닌가? 어찌 문화 뿐이겠는가? 종교인들은 포교와 자선활동을 위해 돈 모으는 데 열심이다. 교육도 돈이 없으면 백년대계를 세울 수 없다.오늘날 예술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들은 모두 돈이 필요하고 특히 돈의 힘이 막대하게 필요한 분야가 공연예술이다. 관객이 빠진 극장이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며 입장권 판매는 곧 예술행위 자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정열만 가지고 공연을 하겠다는 낭만주의자들이 오늘날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시화하지 못하는 「정열적 의도」는 예술작품이 될 수 없다. 공연예술에서 예술성이냐 상업성이냐를 따지는 것은 실상 진부하고 피곤한 질문이다.

그러나 문화에 꼭 필요한 돈은 그것이 원동력의 차원을 벗어날 때 무서운 독이 되는 법이다. 예술의 상업주의란 바로 돈을 제어하지 못하고 「돈독」이 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과 돈은 그 본질에서 궁극적으로 반대방향을 걷는다는 데 아이러니가 있다. 상업주의는 무엇보다 선동적인 까닭에 다수의 호응을 얻고 그렇기 때문에 막강해보이는 것이다. 다수가 선호한다 해서 옳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민주주의」가 상업주의를 조장하기도 한다.

상업주의가 기세 등등하더라도 별달리 돈독을 걱정하지 않으려면 확고한 무게중심이 있어야 하고 이는 바꾸어 말하면 「지성」이다. 문화선진국이란 바로 예술계에 지성인층이 형성되도록 재정적으로 배려하는 나라를 말한다.그리하여 돈걱정 없이 만들어진 높은 수준의 작품을 수용한 시민들이 심미안을 높여나갈 때 돈은 예술을 지배할 수 없게 되고 문화는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기업인이란 이익이 생기는 곳이라면 어디든 투자하는 생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기업의 예술 투자를 이끌어낼 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기껏해야 기업총수가 음악인 자녀를 두었거나 미술품에 취미를 갖는 요행을 바랄 수 밖에 없다. 또 「예술은 돈이다」라고 새로운 진리나 터득한 양 날뛰는 무리가 있어도 속수무책이다. 그런 사회의 앞날은 암담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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