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옥수수·콩 「빅3」 선물가 잇단 최고치/수확감소·비축 바닥… 옥수수값 작년보다 64% 올라/“물량확보 전쟁” 선물거래소 투기·중간업자 북새통세계곡물시장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유엔이 정한 「빈곤퇴치의 해」인 올해 역설적으로 곡물파동의 우려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일 세계최대 닭고기생산업체인 타이슨푸드사는 생산량을 7%감축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최근 러시아가 미국산 닭고기 수입을 금지한 것도 한 요인이 됐지만 근본적으로는 치솟는 사료용 곡물값을 감당할수 없었기 때문에 내려진 극단조치였다.
이날 시카고 선물거래소(CBOT)객장에서 만난 시카고 코퍼레이션사 수석부사장 폴 브라이언트씨는 『타이슨푸드가 버티기 힘들 정도라면 다른 업체들의 사정은 안봐도 뻔하지 않겠느냐』며 『곡물가 상승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는 최근 밀 옥수수 콩 등 3대 주요곡물의 최고가 기록이 연달아 갱신되고 있다.
곡물중개인 브라이언 스코트씨는 『특히 밀과 옥수수를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격상승행진은 기상조건이 크게 호전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코트씨가 가리킨 전광판의 3월 인도분 옥수수 선물가격은 부셸(약 36ℓ)당 3.87달러 수준에서 오르내림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난해 가격은 2.36달러. 무려 64%가 오른 것이다.
옥수수는 지난달말 이미 3월 인도분 가격이 15년만의 최고치를 돌파했다. 밀도 3월 선물가격이 5.03달러수준에 거래돼 최고가격대를 유지하고 있으며 콩 역시 부셸당 7.41달러의 강세를 기록중이다. 곡물선물가격은 수확기까지는 보관비등 부대비용을 감안, 가격이 올라가는게 보통. 그러나 요즘 주요곡물의 선물가격은 인도시기가 멀어질수록 가격이 떨어지는 「전도된 시장(Inverted Market)」형태를 보이고 있다. 수요자들이 최대한 빨리 물량을 확보하려 하기 때문이다.
물량을 확보하려는 투기자와 중간업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선물거래소도 부쩍 북적거리고 있다. 선물거래소 공보담당 데보라 크스트라운씨는 『지난달 시카고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곡물선물 및 옵션계약건수는 524만4,627건으로 95년의 같은기간보다 104.6%나 늘었다』고 말했다.
곡물가 급등의 직접적인 이유는 기상조건으로 인한 수확감소. 기상전문가들은 미국 최대 겨울밀 생산지역인 캔자스주를 강타한 건조한 날씨가 올 하반기 옥수수와 콩생산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브라질남부 아르헨티나 파라과이등 남미에도 고온건조한 기후가 계속되고 있다. 또 사료곡물의 90%이상을 생산하는 러시아 우크라이나 서유럽등 북반구 역시 일기불순으로 생산에 타격을 입고 있다.
반면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개발도상국은 육류생산용 사료와 기호식품용 곡물의 수요를 크게 늘리고 있어 또다른 가격상승요인이 되고 있다. 94년 800만톤의 곡물을 수출했던 중국은 지난해 1,600만톤의 곡물을 수입, 일본에 이어 세계 2위 농산물 수입국이 됐다. 아시아개도국은 지난해 평균 8.7%의 성장을 기록, 곡물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여기에 3년째 계속된 일기불순으로 세계의 곡물비축량은 근 20년만에 최저치로 내려가 있는 상태.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환경운동단체 「월드워치」는 올해 세계곡물비축량이 세계인구의 48일분 소비량에 불과한 2억3,100만톤으로 안정선인 60일분을 크게 밑돌고 있다고 최근 밝혔다.
지난달 미국 농무부가 발표한 세계식량자료에 따르면 2월9일 현재 옥수수 비축량은 5,600만톤으로 연간세계 소비량 5억3,300만톤의 10.5%수준이다. 이는 가뭄이 심했던 93년의 14.0%에 비해서도 크게 낮아진 것이다. 옥수수 당밀 보리 귀리 등 조곡은 10.2%(8,400만톤), 밀은 17.5%(9,700만톤)의 비축률을 보임으로써 주요곡물의 비축량이 75년 이래 최저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태다.
곡물수급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자 EU는 12%에 달하던 휴경지 비율을 10%대로 낮추는 한편 올초부터 곡물에 수출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옥수수경작지의 7.5%에 달하는 휴경지를 경작지로 전환하기로 했다.
또 세계 3대 쌀 수출국인 베트남은 지난해 5월부터 북부국경을 통한 중국으로의 쌀수출을 금지시키는 등 곡물수급대책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식량부족으로 생존위협을 받고 있는 대부분 후진국들은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뿐 뾰족한 대책이 있을수가 없다.
레스터 브라운 월드워치 소장은 『곡물수급문제는 해당국가나 지역차원을 넘어 국제사회안정의 필수과제』라며 『국제사회의 공동대처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시카고=김준형 특파원>시카고=김준형>
◎미 선물거래의 역사/“값변동 손해 최소화” 1851년 옥수수상 첫 거래/1975년 외환거래 등에도 도입 금융선물시대 열어
가격하락에 따른 손해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미래의 한 시점에 이뤄질 상품거래의 가격과 매매조건을 미리 계약하는 것이 바로 선물거래이다. 선물거래의 역사는 곧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대호와 중서부 농장지대에 접해있는 시카고는 서부개척시대에 일찍이 곡물거래의 중심지로 떠올라 1848년 82명의 상인들이 상품거래장소로서 CBOT를 설립했다.
선물거래를 처음 개발한 사람은 늦가을에 구매, 얼음이 녹고 옥수수가 충분히 건조된 봄철에 강을 따라 내려가며 이를 판매하던 옥수수상인들이었다. 겨울동안의 가격변동으로 손해를 여러번 경험한 상인들이 CBOT에서 중간도매상들과 봄에 인도할 옥수수의 가격과 양을 미리 계약했던 것이다. 기록상 최초의 선물거래는 1851년 3월13일 이뤄졌다. 1865년 CBOT가 도입한 선물계약에 관한 표준규정의 기본원칙들은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적용되고 있다.
20세기들어 농산물뿐 아니라 각종 원자재 상품거래에 선물거래가 도입됐고 75년 10월, 주택할부금융과 외환거래에 처음으로 선물거래가 도입됨으로써 금융선물시대가 시작됐다.
이후 국공채 지방채 재난보험 등으로 금융선물거래는 급속히 확대됐으며 82년에는 선물계약을 사고 파는 권리를 거래하는 선물옵션이 재무부장기채권 선물거래에 도입됐다.
CBOT에서 거래되는 금융선물 및 옵션거래는 75년 첫해의 2만125건에서 93년 1억3,600만건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곡물분야의 4배이상 규모로 급성장했다.
◎인터뷰/선물중개사 「레프코」 아담당 피터 셔르씨/“올 곡물수급 20년만에 최악의 상황/중·인도 엄청난 수요증가가 큰 변수”
미국의 최대 선물중개회사 가운데 하나인 레프코사의 아시아담당 책임자 피터 셔르씨(45)는 19년째 곡물선물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이 분야 베테랑이다.
셔르씨의 사무실은 시카고 선물거래소 맞은편 건물에 있지만 눈과 귀는 항상 세계로 열어두고 있다. 곡물수급에는 날씨뿐 아니라 각국의 사회 정치적 상황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선물거래가 이뤄지는 상오 9시30분부터 하오 1시15분까지는 고객의 문의전화를 받느라 커피한잔 마음놓고 마실수 없다. 앞자리에 앉은 부하직원 브렌던 폴리씨도 이날 하오 세계곡물수급에 관한 세미나에 참석키 위해 독일행 비행기를 타야하지만 공항으로 출발하는 시간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셔르씨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선물가격을 정확히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도 인터넷을 통해 들어오는 세계각국의 기상정보에서 눈을 떼지않는다. 그는 『일기예보는 참고는 하되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경험에서 얻어진 철칙』이라고 덧붙였다.
곡물파동 우려에 대해 셔르씨는 『올해 곡물수급이 74∼75년 이후 최악의 상태』라고 말한다. 『파종기와 성장기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고 수확기에 비가 쏟아졌으니 말 다했다』는 것이다. 그는 『개발도상국들의 수요증가가 전체적인 곡물수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수 있는 요소』라고 분석했다. 소득이 늘면 주식의 절대소비량도 늘지만 고기를 더 먹게 되고 기호식품을 즐기게 돼 곡물소비가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이어 『특히 인도와 중국의 엄청난 곡물수요증가가 국제수급의 커다란 변수가 될 것』이라며 『우루과이 라운드가 실효를 발휘하면서 각국의 수입수요가 느는 것도 곡물가격을 압박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곡물수급에 대한 셔르씨의 장기적인 전망은 조심스런 낙관론으로 귀결된다. 그는 『세계시장의 곡물수급은 생각보다 탄력성을 많이 갖고 있다』는 경험론으로 말을 맺었다.<시카고=김준형 특파원>시카고=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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