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다니던 초등학교 뒷담 너머에 맹아학교가 있었다. 요새 말로 시각·언어장애인의 특수학교인 것이다. 우리는 등교때나 하학길에 자주 그 학생들과 마주쳤다. 지각없는 아이들에 의해 지팡이를 빼앗긴 맹인이 쩔쩔매는 광경을 보고 낄낄대다 어른에게 혼이 나는 일도 보았고 수화를 하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놀려주다가 몰매를 맞는 일도 있었다. 나의 담임선생님은 늘 그들에게 친절하도록 지도하시며 그들이 자신의 잘못으로 부자유를 겪고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셨다. 그 무렵 동네에 소반과 상을 등에 잔뜩 짊어지고 몸을 비틀며 어려운 걸음으로 행상을 하는 40세 전후의 뇌성마비 아저씨가 있었다. 그를 아는 골목안 아낙네들은 그가 말이 잘 안되어 간신히 부르는 값을 깎으려 하지 않았고 그에게 여러 가족이 달려 있다고 수다를 떨며 팔아주려 애쓰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이러한 기억들은 오늘날 나에게 크나큰 산 교육이 되었다고 믿고 있다.며칠전 신문에 법원에서 장애인학교의 신축을 방해하던 그 인근주민에게 공사방해를 하지 말라는 가처분결정이 나왔다는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 따르면 어느 사회복지재단이 장애인학교 건립을 추진하자 주변 아파트거주자들이 자녀들이 2부제 또는 과밀학급수업을 받고 있는 터에 그 곳에 장애인학교를 추가건립하는 것은 교육권의 침해이고 아이들의 정서에 나쁜 영향을 준다 하여 건립을 힘으로 막으려 하자 설립자측이 법원에 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고 한다. 여기서 그 법원결정이 옳고 그르다를 말할 계제는 아니다. 다만 어떤 명분이 있든간에 우리 사회에서의 장애인을 바라보는 눈의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의 정부통계에 잡힌 전국 장애인수는 100만명이라 하지만 실은 그 2배쯤 되리라는 추산이고, 몇해 전의 전문기관 추계에 보면 장애아의 약 20%만이 초등특수교육을 받고 있고 나머지는 의무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한다. 한편 기업의 의무고용대상 인원의 22% 만이 취업되어 있을뿐 기업들의 장애인 고용기피로 나머지는 분담금으로 대신되고 있다 한다. 또 며칠전 TV에 대학에 입학한 휠체어 장애학생이 교내에 이용시설이 없어 강의실에 가지 못해 동료들의 부축을 받고 있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이 나라를 민주복지국가라고 한다. 그리고 2000년까지는 세계 중심국가로 만들겠다고 한다. 4월20일이 제16회 장애인의 날이고 근간 정부도 그들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도 눈에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장애인복지추진에 있어 선행되어야 할 기본적인 두 가지 과제를 가지고 있다.
그 하나는 우리 시민의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그릇된 전통적 편견의 불식이며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인식부족을 충전하는 일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오랜 세월 강자의 탄압에 짓눌려 겨우 그 생을 유지해온 탓으로 인간의 모습에 대한 깨달음없이 그저 맹목적으로 삶에 급급해 오면서 약자보호의 박애의식이나 공동체적 시민의식이 매우 미흡했다. 그리하여 장애인의 경우 역시 그들이 어떤 연유로 불행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를 살피기에 앞서 덮어놓고 업신여기려 들며 그들과 더불어 사는 지혜에 어두웠다. 그 까닭에 우리는 장애인이라고 하여 경원하고 혐오하며 때에 따라 백안시하려는 습성에 젖어왔고 잘못된 장애인관이 쉽사리 씻어지지 않고 있다. 만일 학부모들이 21세기를 눈 앞에 둔 현대사회에서 군색한 명분을 앞세워 공사방해를 하려 했음이 사실이라면 그것도 바로 이에 연유한다. 또 만일 장애인학교가 인근 거주 자녀들의 정서를 해친다고 주장했다면 그저 아연할 일이다. 장애인학교는 장애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대하는 정상어린이들에게 생의 행복을 느끼게 하며 그들을 도와주면서 인간애가 넘치는 인성을 길러주는 절호의 기회이며 그들과 고통을 함께 할 줄 아는 민주시민의 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또 하나의 과제인즉 헌법은 장애인의 보호와 복지증진이 국가의 의무임을 천명하고 있고 이에따라 장애인복지법, 특수교육진흥법, 장애인고용촉진법등 실정법을 화려하게 마련해 놓고도 운영에 있어 아직도 시혜의 개념에서 깨어나지 못하여 힘이 못 미친다는 구실로 그 실천이 뒷전에 밀려 있다. 장애인의 인간다운 생활과 평등권의 보장이 국민의 헌법적 권리라면 결코 내일의 경제적 번영만을 위해 오늘의 권리침해의 피해가 강요될 수는 없는 일이며 이는 사회정의를 거역하는 일이 된다. 국민의 기본적 인권이 보장되는 문화국가가 되겠다면 먼저 이러한 의식의 뿌리부터 단단히 고쳐 심어나가야 한다.<변호사·한국법학원장>변호사·한국법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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