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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종의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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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종의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시평)

입력
1996.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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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중독서 돋아나는 고통의 속살비극인가 하면 풍자로 읽힌다. 세상 버림의 노래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의 찬가도 아니다. 정해종의 「우울증의 애인을 위하여」(고려원간)는 그렇게 어정쩡하다. 시로 말할 것 같으면 정리되지 않은 초고들처럼 보인다. 그런데도 기묘한 전율이 있다. 그의 우울은 사탕을 씹는 듯이 살똥스럽고, 그의 냉소는 흑염소만큼 쓰다. 「LP시대는 물 건너갔다./ Liberty, Peace…… 이 케케묵은/ 먼 훗날 인사동 골목에서나 들어 볼/ 자유니 평화니 하는 것들, 깨지기 쉬운 것들」같은 시구는 그런 고통과 독함이 없으면 씌어지기 어려운 시구다.

이 고통과 독한 마음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삶의 어느 순간엔 미치도록/ 죽음의 언저리를 방황하고 싶은 때가 있다」고 시인은 말하거니와, 희망이 덧없음을 알면서도 희망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시인은 희망의 공범자라서, 이 뜻없는 인생 저 너머를, 다시 말해 죽음의 언저리를 자꾸만 방황하면서, 「죽어라고 살만한 시절을 꿈」꾸는 것이다. 아니, 그냥 희망에 중독되어서가 아니다. 그렇게 중독되어 있음을 잘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고통스런 자기 인식이 있기때문에 그는 사회사업가처럼 「내가 외면할 수 없는 것들이 이 세상에 있다」고 말하지 않고, 외면할 수 없는 것들이 「내 모가지를 잡아/흔든」다고 말하는 것이며, 예쁜 시의 기술자들처럼 그냥 귀뚜라미 소리를 녹취하는 대신에, 원고지 「칸칸마다 숨어서 귀뚜라미가 울」고 있다고 하소연 하는 것이다. 귀뚜라미의 그 추한 육체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뜻을 알리라. 청음의 뒷무대엔 더러운 몸이 있고, 「사랑의 뒤통수는 고통」일 뿐이라는 것을.

그러니, 알겠다. 그의 시가 어긋지고 풀어지는 까닭은 시에 대한 중독된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시의 거울엔 언제나 「피가 배도록 문질러도 모자랄 (시인의) 찌그러진 얼굴」이 비치는 것을 짐짓 모른 체 할 수 없어서라는 것을. 그래서 그의 시에는 틈새마다 먼지들이 피어올라서, 시인은 소주와 삼겹살에 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중독자 시인이 말한다. 「내가 마신 술들을 한 순간 토해낸다면 집 앞에 작은 또랑 하나를 이루리라」. 헌데, 이 정직성이야말로 시의 핵심으로 뚫고 들어가는 유일한 문인 것이다. 독한, 격렬한, 또랑만이 깊은 소용돌이의 구멍을 파놓는 법이다.<정과 리 문학평론가·충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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