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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의산문답」(고전여행: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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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용 「의산문답」(고전여행:47)

입력
1996.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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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달·지구의 인력·크기등 근거/서구 근대문물도입 지전설 주장/“조선후기 진보사상 이정표”평가코페르니쿠스 처럼 동양에서도 「지구가 돈다」고 외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실학자 홍대용(1731∼1783)이다.

물론 300년 뒤진 것이기는 하지만 당시 근대문물 전파의 선봉이었던 중국 일본 내 서양 선교사들이 종교적 입장 때문에 지전설을 언급할 수 없었고 동양 학자들 가운데서도 이 이론에 대해 연구한 사람이 전무한 상황에서 이같은 주장을 내세운 것은 동양 지성사에 일대 전기를 마련한 것이라 하겠다.

홍대용의 혁명적 우주관이 가장 잘 녹아 있는 것이 바로 「의산문답」이다. 이 책은 전통적인 유학자 허자가 북경까지 가서 대가들과 토론해 보았으나 진리에 도달하지 못한채 돌아오다가 서양과학을 받아들인 실학자 실옹과 만나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에서 실옹은 해 달 지구의 인력, 해 달 지구의 크기, 바람 구름 비 눈 서리같은 자연현상, 조수간만의 차이, 무지개 현상 등을 논거로 지구가 움직인다는 진리를 허자에게 알려준다.

이같은 자연관을 바탕으로 실옹은 다시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중심과 변두리가 존재할 수 없다』는 평등주의 사상을 피력한다. 이어 『공자가 중국 밖에서 살았다면 그곳을 중심으로 화이를 논했을 것』이라며 상대주의적 세계관을 펼친다.

실옹은 나아가 『인간 금수 초목 등 세가지 생명체는 지 각 혜가 있고 없음이 다를 뿐이지 어느 것이 더 귀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생태주의적 태도와 『우주는 무한하므로 인간과 비슷한 지적 존재가 지구 밖에도 있을 것』이라는 외계존재 긍정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나타나듯 홍대용은 서양과학이 근대화의 무기임을 강조하는 실학자였다. 그의 이같은 사상은 박지원과 박제가로 이어지면서 서양문물을 통해 수공업과 상업을 발전시키려는 중상주의적 실학자군 북학파를 탄생시킨다. 이때문에 「의산문답」은 조선후기 진보사상의 이정표적인 저작으로 평가된다.

홍대용은 어릴 때부터 우주에 관심을 갖고 스스로 천문학을 공부했다. 그가 지전설을 받아들인 것은 이 이론을 공박한 서양 천문학 서적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뒤부터였다.

평생 재야학자였던 그는 만년에 어머니를 봉양키위해 내키지 않는 벼슬생활을 10년간 한 뒤 가세가 어느정도 안정되자 다시 저술활동에 착수했으나 1년만에 중풍으로 쓰러졌다.

이에 부고를 듣고 달려온 박지원은 붓을 갈겨 그를 기렸는데 「툭트이고 민첩하며, 겸손하고 아담하며, 원대하고 정밀하여 일찍이 지구가 한번 돌면 하루가 된다는 위대한 진리를 우리에게 남겼다」는 그 내용이 이후로도 실학자들 사이에서 신념의 푯대로서 오랫동안 회자됐다.<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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