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영상기술로 천년의 사랑 재현/첨단의 기술 활용 상상의 세계속에 빠져들게디지털기술은 「그럴듯함」을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삼아오던 영화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구성과 이미지만 그럴듯하면, 그야말로 「소설같은 이야기」도 있음직한 일로 느껴지게 한다. 영화가 우리의 지각을 자극하는 방식 때문이다.
여기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3차원상의 실제 대상처럼 가상현실화 할 수 있는 컴퓨터그래픽이 더해지면서 우리는 쥐라기시대의 공룡뿐 아니라 장난감들의 「인생역전」도 볼수 있게 되었다.
「은행나무침대」는 상상의 세계를 바로 이런 신기술을 활용해 그럴듯하게 펼쳐보인다. 궁중악사와 공주의 1,000년에 걸친 고전적 사랑이 가장 현대적인 영상기술에 의해 재현됐다. 집요한 성격의 황장군(신현준 분)에 의해 늘 인연의 끈을 놓치고마는 궁중악사 수현(한석규 분)은 미술강사로, 미단공주(진희경 분)는 은행나무 침대의 영혼으로 현대의 서울거리에 나타난다.
수현은 자신의 스케치북에 한 여자의 얼굴을 그린 후 미단이라고 이름 붙이지만, 자신에게 그런 이름이 떠오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우연히 발견한 은행나무침대에서 들려오는 선율의 유래도 알지 못한다. 그러다 황장군이 미단을 찾아 현재에 나타나면서 수현은 1,000년 동안 자신을 기다려온 미단의 존재를 알게 된다.
이때부터 영화는 「사랑과 영혼」에서처럼 로맨스와 스릴러요소를 동시에 차용해 관객들로 하여금 특수효과가 만들어낸 특수한 상황을 그럴듯하게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10세기에 걸친 사랑의 긴 그림자가 남겨 놓았을 법한 감정의 울림이 없다. 미단과 수현이라는 인물에서 풍기는 삶의 비구체성(그들은 오로지 사랑을 위해서만 존재한다) 혹은 단순성 때문에 그들의 사랑에 감응하기란 어렵다.
그들은 1,000년을 살고도 여전히 처음 만났을 때처럼 미성숙한 소년 소녀로 남아있는 듯이 보인다. 오히려 신현준이 연기한 황장군이라는 캐릭터가 그 욕망의 강렬함 때문에 관객의 마음을 밀고 들어올만 하지만, 그가 차지하는 부분은 너무 적다. 이 영화가 좋은 색감의 이미지들과, 잘 계산된 카메라움직임으로 인한 긴장감 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강제규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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