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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3/조각(한국의 예맥: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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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3/조각(한국의 예맥:10)

입력
1996.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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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삶” 김복진이 근대조각 선구/윤승욱 서울대,윤효중은 홍익대 양대산맥 구축/60년대이후 원형회등 소그룹중심 현대미술운동신라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석굴암, 백제의 목조 관음상, 마애삼존불 등은 변화무쌍한 조형적 구사력과 완벽하고 세련된 공간감각으로 조각의 진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프랑스작가 앙드레 말로는 일본 호류지(법륭사)에 있는 백제시대의 목조관음상을 보고 『일본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면 목조 관음상부터 건지겠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내 근대조각은 조각전통과의 철저한 단절 속에서 일본을 통해 수입된 서구조각의 산물로 형성됐다. 양화보다 10년정도 늦게 출발한 근대조각미술은 서울대―홍익대의 대립과 현대미술운동으로 이어지는 양화발전사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며 발전했다.

국내 근대조각 형성에 씨를 뿌린 선구자는 정관 김복진. 1925년 도쿄미술학교 조각과를 졸업한 그는 선전과 일본 제국미술전람회(제전)를 통해 두각을 나타내면서 안석주와 함께 조직한 토월미술연구회, 고려미술원, YMCA미술연구소등에서 제자를 길러냈다. 39세라는 짧은 삶을 불꽃처럼 살다간 정관은 40여점의 작품을 제작했으나 일제말기 전쟁물자 공출과 한국전쟁당시 화재로 모두 없어졌다. 안정감있는 비례와 생명감 넘치는 질감이 두드러지는 「소년」과 고전적 품격으로 토속미를 강조한 「백화」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정관으로부터 조각의 기초를 배운 불재 윤효중 김경승 이국전 박승구 장기남 양희문 구본웅등은 일본유학을 거쳐 본격적인 조각계의 기틀을 세운 한국조각의 1세대이다. 특히 김경승과 윤승욱은 도쿄미술학교 동기생으로 정관의 사실주의 기법을 이어 받았는데, 윤승욱은 서울대 조각과를 세우고 윤효중은 홍익대 미대를 창설, 두 학교의 중심기둥으로 자리잡았다. 또 박승구는 조규봉 김정수와 함께 월북, 평양미술대학을 이끌며 북한조각계의 대부가 됐다.

정관의 직접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작품세계에 영향을 받은 1세대작가로는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도쿄미술학교 졸업)과 사회의 냉담속에 자살한 테라코타작가 권진규(일본 무사시노(무세야)대학졸업)등이 있다. 우석 장발에 의해 서울대 미대로 스카우트된 김종영은 최초의 추상조각을 선보였던 모더니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의 유기적 구조와 입체감을 살리고 생명의 동적인 상태를 비대칭에서 찾고자 했던 그의 추상조각전통은 이후 서울대예맥은 물론 국내 모더니즘조각의 전형이 됐다. 철조작업으로 비극적 정서를 표현했던 송영수, 최소한의 상징으로 구상조각의 진부함과 상투성을 뛰어넘은 김세중, 생명체의 탄생과 전개를 단순하고 명쾌한 형태로 제시하는 최만린, 금속과 철조작품을 즐겨 제작하는 김영학, 순수성과 절대성이 담긴 형태를 탐구하는 최종태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홍익대를 이끌며 작가로서보다는 미술행정가로 활발한 활동을 했던 불재는 이탈리아조각에 나타난 강한 생명주의에 동양적인 신비성을 결합하고자 했다. 그의 제자중 돋보이는 작가는 최초의 여성조각가인 윤영자와 김정숙. 특히 홍익대에서 후진양성에 주력했던 김정숙은 대칭적이고 유기적인 형태를 통해 자연대상으로부터 유추된 추상세계를 보여주었다. 또 입체파적이고 절충적인 작품을 만든 김영중, 인체형태를 단순추상화한 김찬식과 민복진, 대리석의 재료로 동화적 내용을 빚은 전뢰진 등이 그로부터 배웠다.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배출된 2세대작가들은 60년대 현대미술운동이 일어나기까지 스승의 작품경향을 따라가면서 독특한 경향을 형성한다. 서울대출신의 작품은 정통 아카데미즘을 강조하고 내면과 정신을 중시했던 교육이념과 강직하고 차분한 성품으로 제자를 지도했던 김종영의 영향으로 사실주의, 구상지향, 보수적 성향을 보였다. 자유분방한 사학의 분위기가 강했던 홍익대에서는 전위적, 진보적, 실험적, 추상적인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편 유럽에서 활동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어 굵은 획을 그었던 작가는 문 신. 일본미술학교출신인 그는 새의 형상이나 신체의 특정부위를 기하학적인 형태로 빚어냄으로써 생명지향적 추상조각의 대표작가로 기록된다.

60년대 이후 조각계는 서울대―홍대파의 대립을 중심으로 기성―신진, 국전파―비국전파, 보수―전위, 구상―추상 등으로 분열되고 소그룹을 중심으로 한 현대미술운동이 전개된다. 최기원 김영중 전상범 등이 출신학교대립을 벗어나 「공간과 재질의 새 질서」를 추구하며 창립했던 원형회, 장르개념을 벗어나 실험성 강한 작품을 지향하는 박석원 이승택 심문섭 조성묵등이 중심이 돼 결성한 한국 아방가르드협회(AG) 등이 모더니즘의 맥을 이어온 그룹이다.

70년대에는 AG의 작가들과 이우환 이종각 등이 관심을 보였던 기하학적 추상 또는 미니멀리즘 조각이 주류를 이루었고, 80년대이후에는 형태의 완결성보다는 이질적인 재료를 결합하고 연출적 상황을 제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류의 작품과 리얼리즘의 새 지평을 연 민중미술계통의 현실비판적 작품, 전통조각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한국적 미감을 재현하는 작품등 다원화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조각은 새로운 소재가 계속적으로 개발되고 표현영역이 넓어지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특히 70년대 이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설치미술이 큰 영향을 미쳐 전통적 의미의 조각개념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런 점에서 기존 조각은 위기를 맞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입체미술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발전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조각을 중심으로 한 실험적 시도가 미래미술을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도 한다. 과학발전의 산물인 첨단적인 매체가 신선하고 충격적인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고유의 미의식이 다양한 매체에 결합된다면 세계무대진출도 어렵지 않다는 예측도 여기서 비롯된다.

◎최초의 조각가 김복진/한국인 첫 제전 입선뒤 토월회 창설/카프활동으로 5년간 옥고치르기도

정관 김복진(1901∼40)은 우리나라 조각의 틀을 빚어낸 최초의 조각가이자 사회운동과 문예운동을 벌였던 근대 식민시기 지식인의 전형이었다. 1920년 동생인 소설가 팔봉 김기진과 함께 도일한 그는 도쿄미술학교 조각과에 입학, 일본 근대조각의 거장 다카무라 고운(고촌광운)의 지도를 받았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일본 제전에 입선한 후 귀국한 그는 토월미술연구회와 연극단체인 토월회를 창설, 제자를 기르는 한편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운동동맹(KAPF)에 깊이 간여하면서 문화운동을 펼쳤다.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했던 시기는 1928년 조선공산당 재건사건으로 투옥돼 5년간 옥고를 치른 이후. 전통불상조각과 예배상, 「다산선생상」, 선전특선작 「소년」등 대부분의 작품이 이때 제작됐다. 속리산 법주사 미륵대불을 제작하던중 과로로 요절할 때까지 완성한 작품은 40여점. 한국현대조각의 방향을 설정해준 기념비적인 것들이다. 또 그가 일간신문에 기고했던 「신흥미술과 그 표적」등 3편의 글은 최초의 미술비평이었다. 지난해에는 백문기 윤영자 이구렬씨등 조각가와 평론가 16명이 김복진기념사업회를 결성, 기일인 8월18일을 전후해 컴퓨터로 복원한 작품전, 문집발간, 묘비제막, 심포지엄등의 행사를 가졌다.<최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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