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주일쯤 여행을 하고 돌아왔는데 우편함이 꾸역꾸역 미어 터질 만큼 우편물이 쌓여 있었고, 우편함에 들어가지 않을 부피의 것들은 관리실에 따로 보관돼 있었다. 평소에도 우편물이 많은 편이었다고는 해도 그닥 많지는 않았었기 때문에 이상하게 여기면서 힘겹게 한 아름을 안고 들어왔다. 그 중에는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오는 반가운 편지나 아껴가며 읽고 싶은 저서도 있으려니 싶어 싫지 않은 부피였다.그러나 어쩌면 하나같이 국회의원들의 의정보고서, 후원회 결성모임이나 지구당 창당모임 소식, 자기 홍보와 함께 자기 선거구에 사는 친지의 소재를 알려줄 것을 요망하는 인쇄물, 현역의원이나 입후보자 자신의 저서나 배우자의 저서등 앞으로 닥쳐올 국회의원선거의 득표작전임이 명백한 홍보물 일색이었다. 그걸 정리하고 나니 필요 이상 지치면서, 나의 부재 중 나를 찾은 것이 고작 그것들이었다는 게 아무도 안 찾아옴만 못한 황폐감을 안겨주었다. 아직 공천작업도 완료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러하거늘 선거전이 본격화하면 어떠할 것인가. 입후보자들은 아마 제각기 자기의 초상으로 우리의 전국토를 덮고도 남을 만큼 마구 뿌려댈 것이다. 공약은 또 오죽 남발할 것이며 기동성을 위해 차량은 또 얼마나 많이 동원될 것인가. 지레 지치는 것은 그동안 마구 짓밟히고 숨 막히고 이용당하고 내팽겨쳐질 이 땅의 운명과의 동병상련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너도 나도 “개발”
공약이 공약이냐 공약이냐를 따지는 것은 진부한 논쟁일지도 모르겠다. 유권자도 약아져서 헛된 약속을 묵과하지 않고 따지고 요구하게 돼 있다. 또 차기 당선을 노리는 정적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약점으로 낙인 찍히기도 한다. 이젠 그렇게 어리숙한 세상이 아니다. 문제는 지켜져서는 큰일 날 공약을 남발하고, 그 중 최소한 몇 분의 일 정도는 지켜야 체면이 선다는 데 있다. 가장 손쉽고 그럴듯하게 들리는 게 잘 살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개발을 외친다. 가장 빠르고 쉽게 잘 살기 위한 방법처럼 들리는 게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아파트를 짓고 도로와 위락시설을 만들어서 땅값을 올려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소위 개발이라는 게 되면 땅값이 올라 땅부자라는 새로운 부자가 도시인으로 편입되고, 처음부터 땅을 못 가진 사람은 고향을 잃거나 서비스업 종사자가 되어 남게 된 게, 어떻든지간에 국민소득을 올리는데 일조를 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잘살기가 마냥 계속되리라고 여기는 것은 우리 땅을 다 팔면 미국땅을 다 사고도 남을 만한데 뭐가 걱정이냐고 으스대는 것 못지 않게 어리석은 발상이다. 지방마다 관광지가 되고 싶어 하고 사람마다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게 만든 결과 이 땅의 환경이 얼마나 보기 싫고 위태롭게 훼손됐는지는 이제는 감출래야 감출 길 없이 도처에서 흉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기자기한 고장이다. 지방마다 자연의 풍광이 다르고, 전통이 다르고, 고유한 문화재나 유적지를 지닌 사랑스러운 고장인 동시에 혼자서만은 잘 살 수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유기체의 일부분이다. 고유성을 지닐 필요도 있지만 소통을 원활히 하고 쾌적하고 아름다운 조화의 일익을 담당해야 한다. 인체에서도 항문의 역할이 이목구비의 역할보다 조금도 덜 중요한 게 아니다. 지방마다 허파의 구실, 심장의 구실을 마다하고 얼굴노릇만 하려들면 그 나라가 뭐가 되겠는가. 너도나도 관광지가 돼보겠다고 들떠서 점차 국토를 피폐하게 만들고, 결국에 가서는 귀중한 관광자원마저 말살시켜버린 딱하고 어리석은 흔적은 우리가 도처에서 보는대로이다.
○국토는 점점 피폐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사람 치고 애국자 아닌 분은 없을 줄 안다. 방법이 서로 조금씩 다르다고 해도 나라를 사랑하는 것 하나만이라도 공통되고 믿을만한 것이라면 환경문제만은 제발 지역이기주의에 희생되지 않도록 더불어 사랑하고 더불어 지켜나가야 한다. 정치가 어떻게 된 게 점점 이념으로 자기와 남을 구별지을 수 없게 되니까 지역감정이라는 게 등장했듯이 지역감정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말도 많고 탈도 많으니까 아무리 왜곡시키고 모욕을 가해도 말없는 자연을 대상으로 개발을 약속하게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사랑하는 나라란 과연 뭔가? 우리처럼 철저하게 애국적인 민족도 드물거라고 남들도 평하고, 우리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나라는 조국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일 뿐, 우리가 어디 있든지간에 그리며 사랑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자존과 평화를 맛볼 수 있게 해주는, 우리 고유의 자연과 풍속과 연계된 구체적인 삶의 모습은 상실한지 오래다. 우리가 당당하게, 의심의 여지 없이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고지도보다도 우리가 먼저 그 척박한 땅을 사랑하고 몸붙여 산 주민을 가졌음이 아닐까.<작가>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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