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수 첫해 700억서 작년 51조여원/「견김여석」 새긴 넥타이착용등 일화/“군림 이미지벗고 서비스기관 노력”국세청이 3일로 개청 30주년을 맞았다. 국세청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7∼1971년)을 앞둔 시점인 66년3월3일 경제개발계획을 효율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내국세 업무를 담당해오던 재무부 산하 사세국을 확대 개편하면서 독립 외청으로 발족됐다.
방위세 교육세등을 포함한 국세청 소관 세수실적은 발족 첫해 700억여원에서 95년 51조7,400억여원으로 무려 739배가량 늘어났다. 66년 1조370억원이던 경상GNP가 95년 347조3,000억여원으로 335배 늘어난 것에 비하면 세수징수실적이 경제발전을 앞질러 온 셈이다.
납세자 입장에서 보면 국세청의 세수실적이 높아지는 것이 썩 달가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국세청은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가 열리기까지 충분한 재원확보로 경제발전의 견인차역할을 해왔다.
국세청은 발족 첫해인 세수목표를 전년보다 무려 279억원이나 많은 700억원으로 정했다. 당시 이락선초대청장은 세수목표 달성의 각오를 보이기 위해 관용차량에 1―700이라는 번호판을 달고 다닐 정도였다. 지난해 세수실적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이청장은 취임초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견금여석」이라는 휘호를 새긴 넥타이를 세무사찰요원에게 착용토록 하고 국고수표 주판 볼펜 자등 세무사찰에 필요한 일체의 비품을 갖춘 007(700의 역순)가방을 휴대토록 했다. 그만큼 당시에 경제개발을 위한 재원확보는 국세청의 지상 과제였던 것이다.
국세청이 꼭 세금징수만 해온 것은 아니다. 경제발전과 안정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부동산투기억제의 전면에 나서기도 했다. 87년 부동산투기열풍으로 지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자 국세청은 부동산투기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88년3월 서영택청장의 취임과 동시에 강력한 세무대책을 발표하는가 하면 일선 지방국세청에 부동산투기전담반을 설치, 투기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30년동안 납세자수는 78만명에서 619만명으로 8배 늘었으며 세무공무원은 5,500명에서 1만7,400여명으로 3.2배정도 증가했다. 또 본청 조직규모는 4국13과 208명에서 9국30과 700여명으로 확대됐으며 세무서는 77개에서 134개로 1.7배 늘었다. 한편 총조세수입에서 내국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66년 45.5%에서 95년에는 76.2%로 늘어났다.
림채주국세청장은 『앞으로 국세행정은 납세자에게 부담감을 주는 권위주의적 징수기관이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도록 세정 전산화작업을 과감히 추진해 납세자에게 친근감을 주는 세무서를 만드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밝혔다.<유승호 기자>유승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