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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의 대남관/정성산(서울에서 본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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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의 대남관/정성산(서울에서 본 평양)

입력
1996.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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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쑤」의 나라에 귀순해온 지도 어언 1년이 지났다. 어떻게 흘러갔는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새로운 세상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스피디했다.컴퓨터학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로 수원주유소 세차장에서 일한뒤 노동의 대가를 받기도 했다. 또 방송국 생활을 시작, TV에도 나오고 「평양 무공해 섹스 모르디요」라는 책도 썼다. 좌우간 바쁜 하루하루였다. 그런 힘들고 바쁜 와중에도 나는 항시 북에 두고온 부모형제와 친구들을 잊을 수 없다.

인간에게 있어서 인생자체는 변화의 연속과정인 것 같다. 이런 순리대로 한국인이 돼가고 서울총각으로 자리 잡아가는 나에게 있어서 하루하루는 변화의 연속된 순간들로 그때그때마다 전환점을 만들어 가고 있다.

비로소 나는 하느님보다 「일백배」 우상이었던 김일성, 김정일부자가 한낱 인간으로 생각되기 시작했다. 또 사멸해 가고있는 북한의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론의 부당성이 새삼 느껴졌다. 북한사회는 지금 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되기에 앞서 악몽같은 「과도적」단계를 거치고 있다는 인식이 내 안목을 변화시키기도 했다.

진리는 시간에 의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는 깨달음 앞에서 나는 나자신을 새롭게 발견할때가 많다. 이러한 진리속에서 지금 북한도 변하고 있는 것이리라.

북한이 현재 변화하고 있는 모습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88년에 북한 교육역사에서 상대적으로 개혁적 성격을 지니는 남녀공학이 실시됐다.

대중음악과 디스코가 인정되고 전자악기를 이용한 연주 및 창작활동도 허용됐다. 89년엔 제13차 평양축전이 열렸으나 그 이후에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이 붕괴하고 동유럽도 몰락했다. 북한은 철천지 「원쑤」라고 생각했던 미국과 회담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와중에서 김일성이 사망했다.

이 모든 주·객관적 조건에 의해 북한 주민들은 아주 미묘하게 의식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이를 표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 같으면 극존칭의 개인숭배 수식어 없이 김부자를 호칭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또 당정책을 비난한다는 것도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금기를 깰 수 있는 구실을 북한당국이 시대적 흐름에 밀려 스스로 제공해 주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나는 대학시절 뜻이 통하는 「동지」들과 은밀한 곳에서 김일성, 김정일을 존칭없이 부르곤 했다. 이것이 습관이 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김정일」 운운했다가 짐짓 여유를 가장하며 「동지께서는…」을 덧붙이곤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엘리트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한다면 성조기가 나부낄텐데 그것은 원쑤하고는 한하늘 아래서 살 수 없다는 공화국의 정책을 스스로 배격하는 결과』라는 문제제기가 자주 있었다.

일반 주민들은 중국이 한국과 국교를 수립했다는 소식을 간접적으로 전해듣고 『이제는 믿을 만한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라는 절망의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내가 평양에 있을 때 가장 큰 변화를 음미해 볼 수 있었던 것은 북한 대학생과 엘리트들의 대남관이었다.

과거같으면 남조선 괴뢰정부로 불리면서 혁명의 계급적 원수로 제3위의 타도대상(1위는 미국, 2위는 일본)이 바로 남쪽이다. 그런데 이제는 「아랫동네」 「아랫집」 「밑에 아이들」 「남쪽 아이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는 북한사회가 사상을 통제하고 인간의 감정과 본능까지 억압하는 인권의 사각지대라고 하지만 결코 인간의 근본적 지향점만은 억압할 수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아랫동네 아이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정감있게 들리기도 하는 호칭이다. 지금 「윗동네 아이들」은 「우리 동네」로 가는 통일의 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69년 11월 평양 출생

▲85년 평양 연극영화대학TV연출학과 수료

▲86년 인민군 제2군단 정치부 시나리오작가

▲94년 정치부 예술선동대 대장겸 연출가,북한여성들의 성상태 연구

▲95년 제3국을 통해 귀순

▲동국대 연극영화과 입학. KBS TV 「인민군 동작그만」에 출연.

▲저서 「평양 무공해 섹스 모르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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