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총선거가 다가오면서 각 정당은 경쟁적으로 자기 당이야말로 보수정당임을 강조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정치적 보수주의는 그것이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가치가 무엇이건 간에 언제나 반동성과 반민중성의 부정적인 꼬리표 또한 달고 있었다. 그런 보수주의가 오늘날 한국에서는 가장 매력적인 정치적 어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구미에서 보수주의라고 하면 대체로 세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전래의 도덕규범이나 인습 및 제도의 찬양, 민중의 정치적 식견과 역량에 대한 회의, 그리고 좌파의 개혁프로그램에 대한 반대가 그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현재 한국의 정당들이 표방하고 있는 보수주의는 결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보수주의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와 민주정부라는 기존의 체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모든 정당이 다 보수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념적인 내용면에서는 오히려 전통적인 보수주의와는 대비되는 자유주의에 근접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내거는 프로그램 또한 소시민을 겨냥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정당이 보수주의를 운위하는 것은 유권자들의 이른바 「상황적 보수주의」(SITUATIONAL CONSERVATISM)를 자기 당에 대한 지지로 유도하려는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의 보수주의 이론가 클린턴 로시터에 따르면 상황적 보수주의란 기존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질서의 혼란스러운 변화에 대한 반대의 태도를 일컫는다. 상황적 보수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변화에 대한 공포다. 이 공포는 정치영역에서는 급진에 대한 공포로 변형된다. 해묵은 가치나 제도, 생활패턴을 희생시키는 변화는 궁극적인 효과와 관계없이 의혹의 대상이 된다.
지난 3년간 간단없이 급속도로 진행된 문민정부의 개혁은 국민들 사이에 상황적 보수주의를 팽배하게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각 정당의 보수공세는 이같은 상황적 보수주의를 득표로 연결시키려는 전략으로 판단된다. 선거전략으로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내용이 없는 수사만으로 일관해서는 유권자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뿐이다. 각 정당은 그들이 표방하는 보수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를 선명히 밝혀야 한다.
각 정당은 특히 보수와 개혁의 관계를 보다 엄격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보수논쟁의 와중에서 개혁에 급진의 오명을 뒤집어 씌우거나 거꾸로 개혁에 대한 건전한 비판까지도 수구로 매도하는 유아독선의 양분법은 유권자의 합리적인 주권행사에 별다른 보탬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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