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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과 독도문제」/이현희 성신여대교수·한국근대사(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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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과 독도문제」/이현희 성신여대교수·한국근대사(특별기고)

입력
1996.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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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으로 탄생한 임시정부의 초대의장과 주석을 몇번 역임한 석오 이동녕(1869∼1940)은 상해(상하이)에 임정을 수립한 뒤 처음으로 맞는 1920년 3·1절 기념식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제 나라를 다시 찾아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웠습니다. 당연히 일제에 빼앗긴 우리의 영토를 다시 찾아야 합니다. 1905년 일본이 강제로 시마네(도근)현에 편입했다고 억지주장해온 독도까지도 우리는 다시 찾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갑시다』관후장자의 헌걸찬 풍모를 가진 이동녕은 원로로서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임시정부의 기관지였던 「독립신문」도 3·1운동 1주년을 맞이하던 당시 『3·1절은 우리 민족의 부활을 의미한다』며 내외동포에게 우리의 영토에 대한 독립의지를 분명하게 천명했다.

올해의 3·1절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각별한 의미를 오늘의 우리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그 첫째는 일본이 분쟁이나 협상의 대상도 되지 않는 독도영유권문제를 느닷없이 들고 나와 7,000만 한민족을 격분시켜 국민적 저항대를 형성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며칠전에도 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랑) 일본총리는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 설정에 있어서 일부 수역을 제외하는 것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했고, 그의 측근인 이케다 유키히코(지전행언) 외무부장관 역시 독도에 대한 한국의 「실효지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직도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일본은 무슨 속셈으로 이런 망발을 계속하고 있는 것일까.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상으로, 독도가 어느 나라에 귀속되는지 여부를 몰라서 그러는 것인가. 분명 일본은 독도문제를 「영토분쟁」으로 비화시켜 부수적인 이득을 챙기려는 속셈이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마침 2일 방콕에서 한·일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하니 우리측에선 의연하고 위엄성 있게 이 문제를 매듭짓기를 바란다. 과거 이승만 대통령은 고자세로 일본지도자를 면박준 일이 있었다. 회담중 요시다(길전) 일본총리가 『아직도 한국에는 호랑이가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대통령은 곧장 『한국산 호랑이가 많았는데 귀국의 가토 기요마사(가등청정)가 침략해 잡아 먹어서 한 마리도 없소』라고 퉁명스레 대꾸했다. 무안해진 일본총리는 얼굴을 붉힌채 정작 하고 싶었던 독도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는 일화다. 방콕의 한·일정상회담에서도 김영삼대통령은 적어도 독도문제에 관한한, 이같이 당당한 자세로 일본의 기를 꺾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독도영유권문제가 두 번 다시 고개들지 못하도록 단단히 입막음을 해야 할 것이다.

둘째로, 3·1운동은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부인하고 왜인은 섬나라로 돌아가고 우리는 빼앗긴 우리의 영토권을 되찾겠다는, 2,000만의 응집된 절규였다. 일본의 독도망언 이후 세계 각국이 독도의 영유권이 한국에 속한다고 지적했듯이, 1919년 당시에도 미국 등 자유우방은 일본이 강제로 빼앗은 한국의 영토를 되돌려줘야 한다는 반응이었다. 이러한 파급효과가 말해주듯, 3·1독립만세운동은 우리의 영토에 대한 자주권을 요구하는 자유의 함성이었으며 시대적 요구였던 것이다.

노파심 때문에 부언하지만, 독도는 신라 지증왕 13년때인 512년 울릉도의 부속도서로서 우리의 영토로 편입된 분명한 「우리 땅」이다. 그러나 그뒤 이곳이 무인도였기에 몇번의 공도정책이 있었다. 이를 빌미로 일본은 1905년 2월 러일전쟁의 와중에 시마네현으로 편입시켰다. 우리의 입장으로선 불법적인 을사조약이 체결될 무렵이었기 때문에 항의나 담판을 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1945년 8월15일 일제의 패망후 카이로 포츠담선언에 의해 불법점령당한 영토의 무조건 반환이 이루어졌을 때, 독도 역시 대한민국의 영토로 원래대로 귀속됐다. 역사적 근거에 의한 너무도 당연한 조처였던 것이다.

3·1절 77주년을 맞이하며 우리는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명쾌하게 천명함으로써 선조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 일본의 습관성 망언이 되풀이되지 못하도록 실질적인 대책마련도 서둘러야 한다. 환경오염을 확산시키지 않는 범위내에서 동·서도를 연결하고 더욱 많은 세대를 거주케 해서 명실상부한 유인도로 꾸며야 한다. 부두를 건설하고 정기항로도 개설하는 등 관광자원으로 개발, 일반인의 왕래를 자유롭게 해야 한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선언을 뛰어넘어 우리 땅에 대한 자주권을 확대하는 것이다.

3·1절의 교훈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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