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전망의 「얼굴 뒤의 얼굴」한 인간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인간은 과연 타인의 참모습을 알 수 있는가? 정복근 작·한태숙 연출의 「얼굴 뒤의 얼굴」은 바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가면 뒤의 얼굴」이 아니라 「얼굴 뒤의 얼굴」이라 함은 그 여럿의 모습 모두가 참모습이거나 또는 그 어느 것도 참모습이 아닐 수 있음을 암시한다.
박성덕(강신일 분)은 출신을 숨기고 상류층에 편입된 인물로서 철저히 타인이 부과한 통념적 이미지에 맞추어 산다. 그때 어릴 적 여자친구가 나타나 비밀을 폭로하겠다며 돈을 요구한다. 그래서 살인 미수와, 마침 벌어진 화성연쇄살인을 이용한 은폐기도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부인 이지연(예수정 분)에 의해 전모가 드러나고 박성덕은 정신이상자가 되어 집을 떠난다.
다분히 멜로물이거나 추리극에 걸맞은 내용인데, 이것이 작품의 원초적인 약점이다. 즉 타인을 자신의 눈으로 분칠해서 보는 인간의 속성이 부부사이까지도 지배하고 결국 인간관계는 진정한 이해와 포용보다는 소외와 고독의 점철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이 줄거리에 담기에는 아무래도 벅차 보인다.
그러나 이지적이고 복잡한 심리의 부인과 즉물적이고 관능적인 여자친구역을 오가면서 시종 내적인 연결고리를 놓치지 않는 예수정, 절제와 분출을 조화시키는 강신일의 연기가 텅빈 무대를 가득 채우며 사실적 기법에 따르는 경박성을 보완한다. 믿고 사랑하는 부인에게 배신당하는 「푸른 수염」의 우화와 투명한 스크린을 이용한 무대장치, 김대종의 연주가 환상과 몽상의 분위기로 주제를 떠받치고 있다.
정복근은 늘 인간의 삶과 역사에 대해 본질적이고도 괴로운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작가 자신의 진한 고뇌가 배어 있기에 그 질문은 결코 공허하거나 가학적이지 않다. 한태숙은 대단히 논리적이다. 그러나 연극적 감성에 반하지 않는, 형상화의 필수요소인 계산과 예측의 논리다. 한 부분도 이유없이 무대화할 수 없다는 연극적 자존심이 발현된다. 또 예수정과 강신일은 진지한 연기자다. 그것은 내면의 뜨거운 열정과 절제를 바탕으로 하며 따라서 그들의 흡인력 강한 무대는 연극의 참된 매력과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이들은 모두 활동기간에 비해 늦게 알려지거나 공백기를 거친 연극인들이다. 그러나 우리 연극계를 조금만 알면 이러한 네 인물의 조합이 지닌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게 된다. 이번 공연은 그 기대가 결코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었으며 특히 관극의 참맛이 무엇보다 배우의 진실된 연기에 있음을 증명했다.<오세곤 연극평론가·가야대 교수>오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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