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이 없거나 모아둔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노후가 큰 걱정이다. 이렇다 할 노후대책이 있을 수 없는 대다수 봉급생활자들과 농어민들에게는 그나마 국민연금이 유일한 위안이다. 노후에 대비하는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연금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연금 운용을 둘러싸고 말썽이 일어날 때마다 특히 서민층에서 우려가 끊이지 않았던 것은 하나밖에 없는 그 기대가 흔들리고 불안해지기 때문이었다.지금같이 관리가 부실하고 손해가 누적돼 나가는 상황에서 연금지급이 본격화할 경우 오는 2033년에는 기금이 고갈돼 한푼도 남지 않고 연금제도 자체가 붕괴될 것이라는 KDI(한국개발연구원)등의 충격적인 경고까지 있었지만 정부는 이렇다 할 반성이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빠듯한 소득에서 매달 꼬박꼬박 돈을 떼이고 있는 5백만여 봉급생활자들과 2백50만여 농어민들로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무책임이고 불성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모으는 돈인데 남의 공돈 갖다 쓰듯이 함부로 할 수 있느냐는 생각이다. 또 대책없는 노후를 준비하는 국민들의 자조적인 노력을 정부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짐을 얹을 생각을 하는 것도 용인되기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 법원이 시민단체들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위헌심판을 제청한 것은 그동안 쌓여 온 국민적 불만을 대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리적으로 따져서 위헌이 되는지 아닌지는 헌재가 가려줄 일이지만 법논리 이전에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연금전용이 국민재산권 침해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로 목적을 정해서 적립해 나가고 있는 돈을 시중보다 훨씬 싼 금리에 마음대로 갖다쓰고 수천억원의 손해를 입힌다면 그게 바로 재산권 침해가 아니고 뭐라 할 것인가.
연금전용은 도덕적으로도 용납하기 어렵다. 영세한 봉급생활자들과 농어민들이 힘겹게 축적해 나가고 있는 노후자립기금을 축내는 것이 복지사회를 지향한다는 정부가 할 일은 못된다. 더군다나 이대로 가다가는 기금이 고갈된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부실 방만한 관리가 그대로 계속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국민연금은 국가 복지제도의 큰 틀을 이루는 중심적인 제도다. 공공투자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공투자를 위해서 국민연금을 희생하고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정부는 지금 당장이라도 연금에서 손을 떼고 연금이 자체의 안전성과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어야 한다.
국민연금 자체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도 차제에 한번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연금공단의 관리능력과 운영실태에 대한 점검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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