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여선·정정희 「상상」·「작가세계」 문학상 수상/치밀하고 유려한문체·독특한 해학 눈길권여선 「푸르른 틈새」/재미한인 2세 모국찾기 영화같은 묘사정정희 「오렌지」올해에도 여성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질 모양이다. 계간 「상상」과 「작가세계」가 제정한 문학상에 30대초반 여성이 나란히 당선, 여성작가들의 분출하는 창작의욕과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제2회 「상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권여선씨(31)와 제5회 「작가세계 문학상」에 당선한 정정희씨(32)의 장편소설은 뚜렷한 개성과 문학성을 담고 있다.
권씨의 「푸르른 틈새」는 가난과 유약함으로 흐르던 유년의 시간과 80년대 대학생활의 신산한 추억을 결합시켜 한 여성의 성장을 다루었다. 주인공 「나, 손미옥」은 배 타러 떠나 일 년 중 열 달은 아버지 없이 어머니, 언니와 함께 살던 아이. 그 아이가 집과 가족과 학교에서 체험하는 세상과 훌쩍 커 대학생활을 하면서 겪어야 했던 험난한 시간을 줄거리로, 왜소함과 당당함, 세속생활과 이상, 애욕과 절망의 날들로부터 한 줄기 빛처럼 희망의 미래로 비상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아들이 빚을 지고 도망치는 바람에 그의 집에 더불어 살았던 외할머니, 이모, 외숙모가 그의 가족과 함께 가난을 띠로 두른채 엮어내는 진한 삶의 기록은 집이라는 세계에 얽힌 기억이다. 그 경계 밖의 유년생활에는 학교라는 사회가 있고, 또래의 사랑과 질투가 있다. 80년대의 대학생활에서는 학생운동이라는 거센 파도를 타는 미옥의 좌절과 열망이 펼쳐진다. 치밀하고 유려한 문체로 독서와 세상, 이야기와 현실을 성공적으로 결합하고 소통시킴으로써 삶의 본 모습과 그 은밀함을 감동적으로 드러낸다. 「말하는 냄비」민담, 「아라비안 나이트」의 샤리자드와 샤리야르왕,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방타이유양의 이야기등은 이 작품에서 꿈과 믿음을 주는 작용을 하고 있다. 최근들어 성장소설이 많아졌지만 이만치 적확하고 아름다운 문체로 시간을 달리한 여러 사건을 독특한 해학을 섞어가며 일정한 주제로 몰고 간 소설도 드물 것이다.
정씨의 「오렌지」는 재미한인2세 크리스가 모국을 찾는 과정과 그 속에서 만나는 이곤, 혜리의 삶을 통해 젊은이들의 닫힌 세계를 묘사한 작품. 크리스는 부티크(의상실)를 열어 성공한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한국에 있는 외할머니를 찾아온다.
미국생활에 일정한 좌절을 겪는 부모 사이에서 연약하고 순진하지만 차가움을 지니게 된 크리스와 생활력 강한 어머니 아래서 자란 연극배우 이곤, 입양돼 양아버지와 육체적 친밀감을 느끼며 커 온 탤런트 혜리의 삶이 차례로 조명된다. 사랑과 섹스라는 통로로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예민한 감수성과 묘사를 통해 이미지를 위주로 한 영화처럼 펼쳐진다.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하고 있는 정씨는 영화 「비처럼 음악처럼」의 시나리오를 쓴 바 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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