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간간이 웃음 “짐짓 여유”/검찰측서 말막으면 “길지않으니 들어보라”/방청권 노씨때보다 20만원 비싸게 암거래/법원주변 시민단체회원 40여명 격렬 시위26일 전직대통령을 두번째로 피고인석에 세운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은 공판이 가진 역사적 무게로 시종 긴장된 분위기가 이어졌다. 전두환씨의 변호인단은 검찰이 공소사실 낭독을 끝내자 마자 재판장에게 발언 기회를 얻어 공소사실을 반박하는 등 앞으로의 치열한 법정공방을 예고했다. 수의를 입고 법정에 선 전씨는 초췌했지만 간간이 웃음을 짓는 여유와 당당함을 애써 잃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입정·퇴정·법정안◁
○…상오10시 417호 법정에 구속수감후 85일 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전씨는 재판부를 향해 고개를 약간 숙이며 가벼운 목례를 했다.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피고인석 앞줄 왼쪽에 선 전씨는 다른 피고인 5명이 들어오기 전에 무심코 자리에 앉았다가 김재판장이 『잠깐 일어서 계시죠』라고 하자 곧바로 다시 일어났다.
일반 방청석에는 노태우씨 비자금 사건 공판 때와는 달리 기업체 관계자들의 모습은 별로 찾아 볼 수 없었으며, 명지대생 고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등 민가협 회원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장남 재국씨(36)등 전씨의 세 아들도 일반방청객 틈에 끼어 공판을 끝까지 지켜봤다.
○…전씨는 낮12시10분께 재판부가 상오 공판을 끝내고 휴정하자 안현태피고인과 안무혁피고인 등에게 환하게 웃어보이며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등 여유를 보였다. 안현태피고인 등 5명의 피고인들도 어깨를 가볍게 쳐주는 등 서로를 격려하는 모습을 보여 노태우씨 비자금사건 공판 때의 가라앉았던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
전씨는 검찰신문도중 또렷한 목소리로 자기주장을 폈으며, 검찰이 때때로 말을 가로 막자 『길지 않으니 들어보라』며 발언을 계속하기도 했다. 또 『재벌들이 선처를 목적으로 돈을 줬다고 진술했다』는 검찰 신문에는 『그 사람들 속을 들여다 보지 않아 모르겠다』고 맞받았다. 『장세동 전경호실장이 기업과의 다리를 놓지 않았느냐』는 물음에는 『모든 것은 내가 직접 했다』며 장씨를 감쌌다.
전씨는 공판 내내 돈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정치자금, 총선자금, 대선자금이라는 식으로 뇌물이 아님을 강조했다. 또 『재벌이 대통령에게 돈을 주면서 청탁을 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라는 식의 논리를 폈다.
한편 김영일 재판장은 전씨측 변호인의 요청에 따라 전씨에게 재판 도중 20여분을 휴식토록 했다. 김재판장은 또 전씨에 대한 검찰신문 진행도중 『검찰신문에 구애받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이야기하라』고 말했고 공판을 마치면서는 『어차피 넘어야할 산이고 건너야 할 강이니 건강에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하오 5시10분께 공판이 끝나자 전씨는 정호용 피고인 등 측근인사 및 전상석 변호사등과 악수를 나눈 뒤 교도관들에 둘러싸여 법정을 나가 경찰병원으로 돌아갔다.
▷호송◁
○…전씨는 이날 상오 8시50분께 국립경찰병원 7102호 병실에서 환자복 대신 수의로 갈아 입었다. 한층을 걸어 내려와 6층에서 환자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온 전씨는 기다리고 있던 경기 6도 1006호 콤비 승합차에 올라 상오 8시57분께 병원을 떠났다. 전씨는 건강을 감안한 법무부의 배려로 수갑이나 포승은 차지 않았다.
전씨를 태운 호송차는 경찰승용차와 교도관들이 탄 버스등이 앞뒤를 호위하는 가운데 가락동사거리―양재대로―양재IC―양재로터리―남부터미널―교대지하철역을 거쳐 20분만인 상오9시17분께 서울지법 정문에 다다랐다.
호송차는 유리창이 흰색 철판으로 가려져 있어 취재차량 40여대가 뒤따랐으나 차 안쪽을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호송차는 병원 출발 20분만에 서울지법 청사 구치감에 도착했다. 전씨는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여유있는 표정을 지어보인 뒤 교도관들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옅은 푸른색 수의 왼쪽 가슴에 미결 수인번호 「3124」를 단 전씨는 부축없이 양 옆에서 교도관 2명이 호위하는 가운데 천천히 지하 구치감으로 걸어갔다. 전씨는 『건강은 어떠냐』는 질문에 기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채 낮은 목소리로 『좋다』고 대답했으며 사진기자들에게 왼손을 들어보이기도 했다.
▷경찰병원·연희동◁
○…전씨는 이날 평소처럼 상오6시에 일어났으나 굳은 표정에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아침식사로 내놓은 죽과 밥에도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고 병원측은 전했다.
병원측은 『전씨가 여전히 현기증과 두통을 호소하고 있어 담당의사인 이권전 진료1부장이 비상구급약등을 준비해 법정까지 동행하고 병원에서 준비한 전씨의 점심식사도 법원까지 수송했다』고 밝혔다.
하오 5시35분께 병원에 돌아온 전씨는 재판과정이 다소 피곤했던 듯 아침과는 달리 저녁식사로 나온 죽을 조금 들었다고 병원관계자는 전했다.
○…전씨의 연희동 자택에는 부인 이순자씨만 남아 불경을 읽는등 초조함을 달랬다. 연희동 관계자는 『이씨는 전씨가 구속됐을 때보다는 건강이 많이 좋아져 거의 매일 면회를 다녀오곤 했지만 오늘은 첫 재판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얼굴이 많이 핼쓱한 편』이라고 전했다.
▷법정주변◁
○…이날 상오9시15분께 법원에 도착한 전씨의 차남 재용씨가 재국 재만씨와 함께 청사로 걸어가던 중 고 박종철군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던진 계란에 왼쪽 이마를 맞아 박씨와 경호원들이 한때 몸싸움을 벌였다. 또 부정부패 추방시민연합,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등 시민단체 회원 40여명은 상오9시께 법원 정문 앞에서 전씨와 쿠데타세력의 전원처벌등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시위했다.
한편 전씨의 첫 공판 방청권 암거래 가격이 노태우 전 대통령때 보다 20만원가량 오른 50만원까지 치솟은 것으로 알려져 이번 재판에 쏠린 국민들의 관심을 간접적으로 반영했다.<박희정·박진용·배성규 기자>박희정·박진용·배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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