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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잘 못하면 사표 써야 할 판”/대기업 어학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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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잘 못하면 사표 써야 할 판”/대기업 어학열풍

입력
1996.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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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보고 모두 영어로 승진·호봉 반영 “생존무기”/고위임원들도 대상 포함/주변학원 「늙은 학생」 몰려지난해부터 대기업에 일기 시작한 「영어 열풍」으로 기업 사무실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상당수 기업들이 임직원 회의를 영어로 진행하거나 업무보고 문서작성 등을 영어화하고 있으며 영어능력을 승진에 반영하는 바람에 고위 임원들도 더 이상 영어 스트레스의 무풍지대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됐다. 현대그룹은 올해부터 토익시험 대상자를 부사장까지 상향 조정, 97년 500점, 98년 550점, 99년 600점으로 매년 높아지는 커트라인을 넘겨야만 승진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삼성그룹도 외국어 성적이 일정 수준에 못미치는 임직원들에 대해 승진은 물론 호봉승급에서도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외국인과 접촉이 잦은 한진그룹은 토익 750점이상을 얻어야 부장진급이 가능하도록 했다.

임원회의때도 「꿀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으려면 부회장이든 사장이든 최고경영자까지 모두 영어공부를 해야 한다.

LG그룹은 이달초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한 그룹 경영세미나를 영어로만 진행했다. 다행히 변규칠 LG상사회장 등 참석자 40여명이 모두 해외통이라 순탄하게 진행되긴 했지만 사뭇 긴장된 분위기였다.

지난1일 열린 삼성물산 월례조회에서는 신세길사장이 영어로 조회사를 하는 바람에 임직원들이 당황해하기도 했다.

금융기관에서는 수출입은행이 대리 과장 등 중간 관리자를 대상으로 영어모의이사회를 개최하고 있고 산업은행 외화자금실은 지난해초부터 업무는 물론 잡담까지 영어로 하고 있다.

이때문에 직장인들의 영어공부도 더욱 치열해졌다. 기업체 주변 외국어학원은 사내 토익시험을 앞둔 「늙은 학생」들로 고3 교실을 방불케하고 아예 영어 합숙학원에 등록해 2∼3개월간 집중 공부를 하는 직장인들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나마 한달에 다섯번 이상 빠지면 강제 퇴소당하기 때문에 거래처와의 술자리도 번번이 핑계를 대고 미뤄야 한다.

그러나 대기업들의 「영어 신드롬」이 겉보기와 달리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부터 매주 수요일을 「영어대화의 날」로 정해 하루종일 영어로만 말하기로 했던 D건설 해외영업부는 「직원들이 하도 쑥스러워 하는 바람에」 그만둬 버렸다. 영어에 자신없는 사원들이 보고를 다음날로 미루는 등 부작용이 나타난데다 강제성도 없어 중단됐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영어실력 평가의 잣대로 획일적으로 토익을 채택하면서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시험을 치를수록 요령이 생겨 점수가 높아지는가 하면 말하기 능력은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는 불만이다.

모자동차회사의 영업 관리직 직원들은 영어때문에 생긴 스트레스가 너무 크다고 판단, 『외국어가 거의 필요없는 업무인데 승진시험에 토익점수를 반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모아 최고경영층에 전달하기도 했다.

「영어를 못하면 사표를 써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어실력이 더 이상 체면이 아닌 생존의 문제로 부각된데 따른 현상들이다.<남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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