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서양 중세문화에 있어 요즘의 정보고속도로에 버금가는 문화변동의 원동력이었다는 빌 게이츠의 말이 신선하게 다가온다.책 한 권 베끼는데 1년 넘게 걸리던 것을, 구텐베르크는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을 찍어낼 수 있는 금속인쇄술을 고안해 시간을 단축했다. 이 일은 사람들을 편리하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는 인쇄된 언어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게 하였고 결과적으로 정치 종교 과학 문화 교육에 엄청난 변혁을 불러일으켰다.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서는 구텐베르크보다 200년이나 앞선 고려시대에 이미 훌륭한 금속인쇄술로 책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인쇄기술에 대한 연구와 서적 간행은 지속되었는데, 특히 조선의 세종임금은 고속 레이저 프린터처럼 좀 더 편리하게 다량의 인쇄물을 찍어낼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이뤄냈다. 그 전에는 글자를 구리판에 벌여 놓고 조판한 다음 여기에 황납을 끓여 붓고 다 끓을 때까지 기다려 책을 찍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방법은 납이 많이 들고 몇 장 인쇄하고 나면 활자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기껏해야 하루에 두어 장 찍을 수 있었다. 이런 불편을 감지한 세종은 즉위 2년부터 관리들을 독려하여 납도 적게 들 뿐 아니라 하루에 수십장을 찍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였던 것이다. 이후로도 세종은 활자가 큰 갑인자를 만들어 우리나라 인쇄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세종이 인쇄술에 관심을 둔 것은 많은 서적을 인쇄하여 후세에 전하려 함이었고, 「글은 인쇄하지 못할 것이 없어 배우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이니 문교의 일어남이 마땅히 날로 앞서 나아갈 것」이라는 비전 때문이었다. 이것을 보면 세종이 문맹없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을 품은 것은 한글 창제 보다 훨씬 앞선 것임을 알겠다. 세종이 품은 문화혁명의 뜻을 오늘 빌 게이츠의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한다.<송혜 국립국악원 학예연구관>송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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