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는 23일 학위수여식을 가졌다. 송석구 총장의 「새벽을 밝히는 거인이 되라」는 졸업식사를 소개한다.친애하는 졸업생 여러분. 정든 상아탑을 뒤로 한 채, 미지의 세계로 떠나가는 여러분의 장도에 격려와 축하를 드립니다. 만해 한용운님의 절제된 목소리처럼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한 것처럼,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오늘의 서운한 이별이 벅찬 「만남」의 감회로 승화하기 위해서 우리는 더욱 더 지금의 순간에 충실해져야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미증유의 정신적 방황을 겪고 있습니다. 동서냉전의 종식과 함께 찾아든 경제적 대립은 이제 또 다른 대결로 치닫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경제적 논리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그릇된 가치관이 팽배해져 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앞에 펼쳐질 21세기는 더 이상 대립과 투쟁의 시대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리 앞에 겸손하고 의로운 삶이 존중되는 새로운 가치질서가 미래를 선도해 나가리라고 봅니다. 20세기가 군사력 경제력의 경쟁시대였다면, 새로운 세기는 문화적 풍요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한국적 문화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원래 유교 불교 도교 등 동양사상의 뿌리에서부터 그 문화적 특수성을 키워 온 국민들입니다. 그 삼교의 가르침을 대립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융섭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 온 탁월한 사상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민족의 성인 원효 큰스님은 이것을 「화쟁」이라고 말합니다. 미움은 결코 복수에 의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용서야말로 피의 복수를 멈추게 하는 가장 가치로운 실천의지입니다.
친애하는 졸업생 여러분. 여러분은 다가오는 「태평양시대」의 주역들입니다. 구세대의 반목과 투쟁적 의식 대신에 겸양과 화해를 몸소 실천해야 하고 화합의 시대를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나는 지난 4년간의 여러분들 학당이 바로 이 가치질서 확립을 위한 디딤돌이었다고 확신합니다. 나약한 지식, 관념의 허상 대신에 뜨거운 감성과 냉철한 지성으로 현실의 고난을 타개하는 참 지성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일이 능사일 수만은 없습니다. 또한 무명의 어두움을 한탄하지만은 말도록 합시다. 차가운 바람속에 봄이 잉태되어 있듯이, 우리에게는 개척해야 할 「서부」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을 밝히는 벅찬 희망의 여명, 새벽의 찬연한 빛이 됩시다. 그 힘찬 첫 발을 내디디는 마당이 오늘의 졸업식임을 명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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