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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배운 한(장명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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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배운 한(장명수 칼럼)

입력
1996.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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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대학에 못간 것은 가난했기 때문이야. 외삼촌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엄마와 이모는 대학을 포기하고 돈을 벌어야 했단다』라고 50대의 엄마가 아이들에게 얘기했더니 고등학생인 막내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엄마가 공부를 못했던 거지? 좋은 대학에만 붙으면 장학금도 많고, 아르바이트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공부 잘하는 학생이 왜 대학에 못 가?』

『엄마가 공부를 못했다구? 엄마가 다닌 중고등학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애들이 다니던 학교야. 장학금이나 아르바이트자리가 지금처럼 흔했는줄 아니?』

딸은 믿는 것같지 않았다고 그 엄마는 말했다. 수능점수만 잘 받으면 명문대학들이 장학금을 주며 모셔가고, 외국유학에 교수채용까지 약속하는 세상이니, 공부 잘하는 학생이 가난해서 대학에 못갔다는 것을 안 믿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한 세대전만 해도 돈이 없어 대학에 못가는 일이 흔했고, 여자들에겐 그런 일이 더 많았다. 수재라고 할만큼 우수한데도 대학은 커녕 초중고에 제대로 다니지 못한 경우도 꽤 있었다.

입학과 졸업철이 되면 만학도들의 이야기가 자주 신문에 나온다. 삼십 혹은 육십에 검정시험을 쳐서 중고교나 대학에 진학하는 사람, 대학 졸업식에서 학사모를 쓰는 사람, 전공을 바꿔서 다른 분야로 진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각종 학원에서도 만학도들을 만날 수 있다. 불우한 환경속에서 한글조차 깨우치지 못했지만 차마 글 모른다는 내색을 못한채 살아왔던 사람들이 가나다라를 배우며 까막눈의 한을 풀고, 자녀들을 키운후 시간이 나자 중고과정을 공부하며 향학열을 불태우는 엄마들도 있다. 그들을 보면 못배운 한처럼 깊은 것이 없고, 배우는 보람처럼 큰 것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옛날 아이들은 부모가 『말 안듣는 애는 학교가지 말라』고 야단치면 울다가도 울음을 뚝 그쳤지만, 요즘 부모들은 자녀에게 감히 그런 야단을 치지 못한다. 아이들이 학교에 안간다고 할때 더 겁이 나는 쪽은 부모이기 때문이다. 요즘 학생들은 너무 공부에 지쳐 공부의 소중함을 오히려 잊고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한을 품고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사무치는 한은 못배운 한이다. 공부하기 싫어 몸이 뒤틀리는 학생들은 뒤늦게 학사모를 쓰고 기뻐하는 만학도들을 보며 그 점을 되새기기 바란다.<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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