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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병·장세동·최세창씨 구속영장(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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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병·장세동·최세창씨 구속영장(요지)

입력
1996.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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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병◁▲61세. 1956년 6월12일 육군사관학교를 제12기로 졸업하고 육군소위로 입관한 이래 수도경비사령부 작전참모,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인사관리처장 등을 거쳐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대통령 시행사건인 세칭 「10·26사건」당시에는 제20사단장으로 근무하고, 그후 육본 인사참모부장, 국군보안사령관 등으로 재직하다가 1984년 7월7일 육군대장으로 전역하여 제12, 13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현재 제1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중.

<범죄사실> 10·26사건으로 인해 1979년 10월27일 상오4시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일원에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이 계엄사령부에 소속된 합동수사본부의 본부장으로 임명되어 계엄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과의 사이에 잦은 의견대립으로 마찰을 빚어오던 중,

12월 초순께 정승화 총장이 전두환의 잦은 월권행위와 군 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을 문제삼아 국방부장관 노재현에게 그의 인사조치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자, 이를 차단하고 그가 중심이 된 소위 「하나회」소속 장교들의 군내 입지를 보전하기 위해 10·26사건 당시정승화 총장이 박 대통령 시해 현장 부근인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본관 식당에 있다가 김재규와 육본으로 동행한 사실로 인해 일부 군인들 사이에 정승화 총장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을 기화로 그를 김재규와의 관련 혐의에 대해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강제 연행하여 그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 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제압함으로써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하고,

전두환과 제9사단장 노태우등이 12월7일께 국군보안사령부에서 서로 만나 정승화 총장의 연행 조사 문제를 논의한 끝에 그 연행일을 12월12일로 결정하고, 전두환이 보안사 대공2과장 겸 합수부 수사1국장 이학봉에게 연행장소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여 그 검토결과를 토대로 12월8일께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연행장소로 결정한 후, 12월9일께 이학봉, 보안사 인사처장 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 육군대령 허삼수, 육본 헌병감실 범죄수사단장 겸 합수부 수사2국장 육군대령 우경윤 등에게 구체적인 연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정승호 총장의 연행에 대응하여 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특수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 수도경비사령과 육군소장 장태완, 육본 헌병감 육군준장 김진기 등을 12월12일 당일 만찬 초청 명목으로 유인하여 부대지휘를 사전 차단키로 하고,

피의자 등 소위 「하나회」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지역 주요부대 지휘관들은 그날 저녁 경복궁 구내 수도경비사령부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필요시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고, 전두환, 노태우, 국방부 군수차관보 육군중장 유학성, 제1군단장 육군중장 황영시, 수도군단장 육군중장 차규헌, 제71훈련단장 육군준장 백운택, 제1공수여단장 육군준장 박희도, 제3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최세창, 제5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장기오, 수경사 제30경비단장 육군대령 장세동, 수경사 제33경비단장 육군대령 김진영, 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육군대령 허화평, 위 이학봉, 허삼수, 보안사 정보처장 육군대령 권정달, 위 우경윤, 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육군대령 성환욱, 수경사 제33헌병대장 육군중령 최석립, 육본 헌병대장 육군중령 이종민, 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육군준장 정동호, 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 육군대령 고명승, 수경사 헌병단장 육군대령 조흥,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육군중령 신윤희, 보안사 보안처장 육군대령 정도영, 제30사단장 육군소장 박희모, 제30사단 제90연대장 육군대령 송응섭, 제2기갑여단장 육군준장 이상규, 제9사단 참모장 육군대령 구창회, 제9사단 제29연대장 육군대령 이필섭, 제9사단 작전참모 육군중령 안병호, 제1공수여단 제2대대장 육군중령 서수열, 제1공수여단 제5대대장 육군중령 박덕화, 제3공수여단 제15대대장 육군중령 박종규 등과 순차로 공모하여,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백운택,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장세동, 김진영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께부터 하오 7시께 사이에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하는 한편, 허화평, 권정달, 정도영 등은 보안사 상황실을 거점으로 하여 각급 부대 지휘관의 전화를 도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대 동향과 병력이동상황을 파악, 수시로 위 지휘부에 보고하는 체제를 갖추고,

전두환은 12일 하오 9시30분께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백운택, 박희도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승화 총장의 연행 조사를 재가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하고, 그 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정승화 총장의 원상복귀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피의자 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피의자 등은 계엄지역에서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사전승인을 받지 아니하거나 명시적인 병력출동 금지명령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여 선제공격하기로 하고, 그 사실을 숨긴채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지시에 따라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등에 전화를 걸어 그 부대장이나 참모들에게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 달라고 회유하여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하고,

피의자는 12월12일 하오 8시30분께 제20사단 참모장 육군대령 노충현으로부터 「진도개 하나」비상이 발령된 사실과 육군참모차장 윤성민, 3군 사령관 이건영등이 피의자를 급히 찾고 있다는 사실을 전화로 보고받고도 부대로 복귀하지 않은 채 위 제30경비단장실에 계속 머무르면서 10-15분 간격으로 위 노충현에게 전화를 걸어 『부대장악을 철저히 하고 자신의 육성지시 없이는 병력출동을 하지 말라』고 지시함으로써 성남시 소재 육군종합행정학교에 주둔하고 있는 제20사단 사령부 및 제61연대, 서울 노원구 상계동 소재 불암산 예비군훈련장에 주둔하고 있는 제62연대, 남양주시 소재 미금 예비군훈련장에 주둔하고 있는 제60연대 병력으로 하여금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갖추고 기동타격대 및 의정부지역 도로봉쇄 임무를 수행하게 하여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지시에 따라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의 병력출동을 사전에 저지하는 등.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자신의 지휘하에 있는 제20사단 병력으로 하여금 출동준비태세를 갖추고 기동타격대 및 의정부지역 도로 봉쇄 임무를 수행하게 하여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지시에 따라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의 병력출동을 사전에 저지하는 등 전두환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음.

▷장세동◁

▲59세. 1960년 3월 육군사관학교를 제16기로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래 대통령 경호실차장보좌관, 수경사30경비단장, 특전사작전참모, 특전사3공수여단장, 대통령 경호실장 등을 거쳐 84년 12월7일 육군중장으로 전역한 후 계속하여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근무하다가 85년 2월19일 국가안전기획부장에 임명되고 87년 5월26일에 퇴직.

<범죄사실> 피의자는 12월12일 하오 7시40분께 허화평으로부터 정승화 총장을 무사히 연행했으며 전두환이 정승화총장 연행, 조사 문제를 보고하기 위해 총리공관에 갔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있는 장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고,

잠시후 허화평으로부터 다시 정승화 총장 연행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해 연행하러간 우경윤대령이 부상을 입었으며 지원 나간 33헌병대 병력이 공관경비를 맡고있는 해병대 병력에 포위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그곳에 있는 장성들에게 그 상황을 설명해준 다음 33헌병대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김진영과 의논, 동인으로 하여금 33경비단 병력 대신 30경비단 소속 5분대기 중대병력 80여명을 인솔하고 총장 공관으로 가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조치하고,

피의자는 수경사에서 비상이 발령되고, 장태완 수경사령관으로부터 주요 지휘관 비상소집 명령이 하달되었음에도 소집에 응하지않고 30경비단 상황실로 전파되는 상황과 각 부대에 전화하여 파악한 상황등을 통해 육본 수뇌부가 비상을 발령하고 정승화 총장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과 9공수여단, 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병력출동을 전제로 한 준비명령을 하달한다는 첩보등을 수집해 30경비단에 모인 장성들에게 전파했음.

▷최세창◁

▲62세. 1957년 6월 육군사관학교를 13기로 졸업하고 육군소위로 임관한 이래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여단 대대장, 제37사단 연대장, 수도군단 작전참모 등을 거쳐, 1979년 10·26사건때는 제3공수여단장으로 근무하고, 그후 제20사단장, 수도경비사령관, 1군단장, 육군참모차장, 3군사령관, 합동참모의장 등을 역임하다가 1989년 4월 육군대장으로 전역한 이래 대한광업진흥공사 사장, 국방부장관 등을 거쳐 1995년 11월28일까지 대한태권도협회 회장으로 역임.

<범죄사실> 피의자는 12월12일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백운택, 박희도, 장기오, 유학성, 깁진영등와 함께 하오 6시께부터 7시께 사이에 장세동이 단장으로 근무하는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하고,

피의자는 12일 하오 11시30분께 자신이 여단장으로 있는 특전사 제3공수여단 박종규에게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박종규는 12일 자정께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특전사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대 소속 1개 지역대병력 38명으로 하여금 사령부 외곽을 포위케 한 다음, 육군 대위 김흥열, 육군대위 나영조, 육군중사 신현수, 육군하사 6명과 함께 안으로 진입,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육군하사 6명이 이들에게 소총으로 집중사격을 하여 김오랑을 살해하고, 정병주에게 제1수장골무지우부개방성분쇄골절상을 입히고,

피의자는 육군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월13일 상오 2시께 서울 송파구 거여동소재 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대대 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천호대교, 강북로, 한남동을 거쳐 상오 3시경 경복궁으로 진주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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