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햄프셔주 미대통령 공화당후보 지명전에서 패트 뷰캐넌의 승리는 극우 보수주의가 미국사회 저변에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 우리 국익과 관련시켜 볼 때 간과할 수 없는 미국 여론의 변화이기도 하다.물론 이 예선전이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8월에 있을 전당대회까지 6개월 간의 긴 싸움의 시작에 불과하다. 또 공화당 후보 지명에 성공하더라도 11월에 있을 본선에서 클린턴대통령을 이길 수 있을지는 그때 가 봐야 알 수 있다.
그러나 뉴햄프셔주 예선은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유권자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적 지표의 구실을 해온 전통 때문에 이 예선 결과에 쏠리는 내외의 관심은 지대하다. 여기서 이긴 후보가 그 해의 대통령 선거전을 리드해 나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뉴햄프셔주 예선에서 이긴 후보가 어떤 성향의 인물인가는 그래서 주목의 대상이 된다.
그의 공약을 훑어보면 우선 국내 문제에서는 낙태·동성연애권을 부정하며, 총기소지 규제 철폐를 주장한다. 복지혜택 범위를 주정부가 자율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해외이민 유입을 앞으로 5년간 잠정 중단하며, 불법이민이 많은 멕시코와의 국경에 철책을 설치한다는 극약처방까지 내놓고 있다.
통상분야에서는 세계무역기구(WTO) 탈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해체, 중국에 대한 최혜국(MFN)대우 철폐, 대미 무역흑자국에 대한 보복관세 강화 등을 다짐하고 있다. 또 외교·군사 부문에서는 보스니아에 파견돼 있는 2만명의 평화이행군을 철수하고, 국방예산과 해외주둔 병력을 대폭 삭감하는 등 지역분쟁 개입을 최대한 억제하는 신고립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말하자면 팍스 아메리카나의 국제질서를 지키는 세계 최강국 국민으로서 미국인의 짐을 이제 그만 벗어 던지고,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의 국민답게 미국사회의 다수계층인 백인 저소득 근로자의 생활부터 부자가 돼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런 극단적 정치성향 때문에 뷰캐넌이 전당대회에서 공화당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우리의 관심은 그가 지명에 성공하느냐 여부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이번 예선에서 그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여준 30대 전후 미국 백인 저소득층의 소리를 그가 결집해 놓았다는 데 있다. 미국사회 저변의 흐름을 대변하는 그의 상징성이 우려되는 것이다.
미국이 국익 제일주의와 신고립주의로 돌아설 경우 우리의 통상·외교·군사 정책도 궤도수정이 불가피하며, 그것은 우리 국력의 발전에도 심대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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